아메리카노 말고 캐나디아노를 마신다는 캐나다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의 과격한 한 분께서 불붙이신 덕에 캐나다에서 미국산 버번이 치워지고, 아메리카노를 아메리카노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소식 말이다. 난 이 이야기를 듣고 그렇다면 칵테일 아메리카노도 캐나디아노로 부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캐나다의 바에서도 모두 아메리카노에 선을 긋고 캐나디아노로 다시 적어두었는지 말이다. 아니면 부끄러워하면서 이렇게 주문해야 할지. “아메리카노로 불리던 그거 뭐라고 해야 하나요?”

진과 캄파리, 스위트 베르무트를 1:1:1 비율로 넣어 만드는 칵테일 아메리카노. /플리커

나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커피보다는 칵테일 아메리카노를. 그렇다고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도 아니다. 커피에 자부심이 있는 집이 아니라면, 선호하는 스페셜티 원두가 있지 않다면,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아메리카노는 나빠도 그리 나쁘지 않고 좋아도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마실 만하다. 애초에 맛을 기대하고 시키는 음료가 아니라서 수용치의 폭이 넓달까. 이게 내가 생각하는 아메리카노의 미덕이다. 에스프레소만을 커피라고 생각하는 이탈리아노들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아메리카노에도 미덕은 있는 것이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 같은 느슨한 감성이라고 해야 할지.

아메리카노는 커피를 넣은 칵테일이 아니다. 어쩌다가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을 공유하게 되었으나 커피는 들어가지 않는다. 캄파리와 스위트 베르무트를 동량으로 넣고 탄산수를 붓는다. 밀라노에 있는 캄파리 바에 들른 미국인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진위는 알 수 없다. 캄파리 바에서 내주었던 것은 캄파리 소다라고 들었다. 캄파리에 탄산수를 탄 게 캄파리 소다다. 캄파리 특유의 쓴맛에 물을 탄 거라 이게 무슨 칵테일인가 하고 어리둥절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미국인이 캄파리 소다에 스위트 베르무트를 타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는 이야기.

내가 칵테일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것은 달콤 씁쓸하기 때문이다. 충분하지는 않다. 가벼운 달콤 씁쓸함이라서. 충분한 것은 네그로니! 달콤 씁쓸한 칵테일의 원조이자 내가 좋아한다고 여러 번 밝힌 이 술은 완벽하다. 한쪽 발은 달콤함에 한쪽 발은 씁쓸함에 잠기게 하면서 순간적으로 코를 훑고 지나가는 진(gin)의 향기란… 마음이 뚫린다. 내가 진을 좋아해서 네그로니가 더 특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좋은 걸 좋지 않다고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히 세다. 그도 그럴 것이 진과 캄파리와 스위트 베르무트를 1:1:1로 넣는다. 롱드링크(간단히 말해 양이 많다)라서 술 한 가지를 30ml에서 35ml는 넣으므로 도수가 상당하다. 네그로니는 무려 30도. 아메리카노는 7도다. 이러니 네그로니가 압도적으로 맛있지만 30도라는 도수가 부담스러운 날은 네그로니의 모사품인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된다. 꼭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관계 같지 않은가요?

심심하고 밋밋한, 하지만 뭐 나쁘지 않은 거. 특별하지는 않지만 대중적이고, 오히려 그 평범함이 미덕인 그런 거. 이런 정서에 ‘아메리카노’라는 말이 조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이지만 평생 유럽을 그리워하며 유럽적인 걸 추구한 헨리 제임스 같은 사람 시선에서 붙일 만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특별한 ‘아메리칸’ 헨리 제임스를 무척 좋아하고, ‘여인의 초상’을 읽는 내내 하이 상태였다는 것도 적어둔다. 주말에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 ‘아메리칸’을 읽으며 아메리카노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이렇습니다. 제가 말하고 제가 설득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