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병원 충남권역외상센터 외상외과 허윤정 교수가 소생실에서 수술용 장갑을 착용하고 있다. 무영등(無影燈) 때문인지 회색 수술복이 푸르게 보인다. “새벽 4시쯤 ‘초대박’ 응급수술을 마치고 나왔는데 또 벨이 울리면 솔직히 변기통에 폰을 던지고 지구를 떠나고 싶어져요. 그래도 이 자리에 계속 있는 건 보람이 크기 때문입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단국대병원 충남권역외상센터 외상외과 허윤정 교수가 소생실에서 수술용 장갑을 착용하고 있다. 무영등(無影燈) 때문인지 회색 수술복이 푸르게 보인다. “새벽 4시쯤 ‘초대박’ 응급수술을 마치고 나왔는데 또 벨이 울리면 솔직히 변기통에 폰을 던지고 지구를 떠나고 싶어져요. 그래도 이 자리에 계속 있는 건 보람이 크기 때문입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외상 중환자실에서는 “쉬익, 쉬익”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렸다. 기계에 의지해 호흡하는 소리였다. 교통사고나 추락 등으로 다발성 골절과 광범위한 장기·신체 손상을 입은 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곳. 환자 대부분은 붕대나 거즈를 감아 살갗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창자가 으깨지고 살점이 분쇄되고 혈관이 동시다발적으로 절단된 상태. 생(生)보다 사(死)에 가깝지만 여기로 실려 왔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눈 떠보세요, 눈 떠봐요!” “여기 어딘지 알겠어요? 이름 뭐예요, 이름!”

수술복 위로 백색 가운을 걸친 단발 여성이 적막을 깼다. 단국대병원 충남권역외상센터 외상외과 허윤정(37) 교수다. 환자는 미동도 없었다. 그러나 여러 의료 장비를 착용한 상태에서도 의식은 죽지 않았다. 산소포화도·심박수 같은 활력 징후(바이털 사인)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 환자는 지난달 25일 공사 중이던 경기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콘크리트 교각(다리 기둥) 위 상판에서 추락했다. 52m 높이, 아파트 10층에서 떨어진 것과 같았다. 이런 경우 전신 골절, 척추 분쇄, 장기 파열 등의 중상으로 생존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 그런데 환부를 살피던 허 교수가 간호사에게 말했다. “하루 더 (상태를) 본 뒤 일반 병실로 이동해도 되겠다.”

허 교수는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권역외상센터 외상 전담 전문의 중 한 명이다. 응급 수술실과 외상 중환자실을 밤낮없이 오간다. 단 몇 분, 몇 초의 판단으로 환자의 생사가 갈리는 전쟁터에서 일상적으로 살아간다. 33시간 연속 근무를 하거나 주 80시간 넘게 일하는 것도 흔하다. “쉬는 날에도 가끔 ‘응급 콜’ 환청이 들린다”는 허 교수는 “죽음의 문턱에 있는 생명을 내 손으로 살려내고 싶어 이 일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천안 충남권역외상센터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찰하며 이 의사를 만났다.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

◇반쯤 먹은 도시락의 의미

-저 환자는 어떤 상태였나요.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실려 왔어요. 진단명이 복잡하고 많아 설명이 어려워요. 환자 개인 정보라 함구해야 하고요.”

-중증 환자는 수술도 오래 걸릴 것 같은데.

“보통 2시간 만에 1차 수술을 끝내요. 외상 응급 수술은 길어지면 안 돼요. 혈압 유지가 안 되는 상황에서 오래 개복해 두면 혈액 응고가 안 되거든요. 제일 심각한 곳부터 최대한 빠르게 끝내는 것이 핵심이에요.”

허 교수는 “복부 안의 절단된 장기를 켈리(가위 모양의 집게)로 물어버리고 거즈 패킹(뱃속을 가득 채움)만으로 1차 수술을 끝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개복한 부위를 랩으로 감고 나오기도 한다. “꼼꼼하게 꿰매 마무리하는 수술을 떠올리면 아마 기겁할 거예요.”

-그래도 다행히 살렸네요.

“안도하기는 일러요. 방심하는 순간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질 수 있거든요. 언제든 예상치 못한 합병증이 올 수 있는 게 외상 환자예요.”

-이런 환자가 많이 온다면서요.

“일상적으로요. 어떤 날은 여럿이 실려 오거나 연이어 오기도 하죠. 사고는 갑자기 일어나니까요.”

의료진도 늘 대기 상태다. 지난달 기준 전국 권역외상센터 17곳의 전담 전문의는 총 188명. 전문의 1명당 인구 27만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강도 높은 노동과 만성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단국대병원 외상센터는 전문의 12명이 3~4명씩 팀을 짜 근무한다. 허 교수는 한 달에 8번, 오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당직을 선다. 그러고도 오후 5시까지 연장 근무. “중환자실 환자를 볼 인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7)는 달력 읽는 법을 또래보다 빨리 배웠다. 엄마가 당직으로 없는 날엔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두기 때문이다.

허윤정 교수가 구급차에 앉아 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소생실은 후덥지근했다. 허윤정 교수는 "피를 흘리면 체온이 떨어지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온풍기를 튼다"고 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살인적인 스케줄 아닌가요.

“빡빡하긴 해도 저희 병원은 사정이 좋은 편입니다(단국대병원 외상센터는 지난해 보건복지부 평가에서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아주대병원). 전문의가 열다섯은 있어야 잘 돌아갈 테지만, 쉬는 날 연락을 받아 본 적은 없어요. 수도권에 가깝고 시설이 큰 병원은 여건이 괜찮은 편이에요. 지방에는 전문의가 2명뿐인 열악한 센터가 더 많아요.”

허 교수의 당직실에는 뜯지 않은 컵라면과 반쯤 먹은 도시락이 널려 있었다. “언젠가부터 구내식당에는 안 가요. ‘콜’이 떨어져 식판에 갓 받은 아까운 밥을 버리는 일이 잦아서요.”

-여건이 더 나은 병원에 지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의사 수에 비해 어려운 환자가 많이 오는 병원이 있는데 단국대병원이 그랬어요. 차가 전복되거나 동승자가 사망하거나 고속 충돌을 했을 때와 같은 조건이 충족돼야 외상 센터로 연락이 와요. 이 병원 근처에는 고속도로가 있잖아요. 서해안에는 산업 단지가 있고, 농경지에서는 경운기나 트랙터 사고가 일어나고요. 그래서 ‘여기서 배워야겠다’ 생각한 겁니다.”

◇인터뷰가 세 번 중단됐다

약대 졸업 후 의학전문대학원에 갔고 가시밭길이라는 외상외과를 택했다. “어릴 때부터 청개구리 기질이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와 남편·사촌 등 친인척 다수가 ‘필수 의료’ 분야 종사자다. 그녀는 분당서울대병원 수련의 시절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전 아주대 의대 중증외상센터장) 강연을 듣고 자진해 아주대병원 외상센터 파견을 요청했다.

-이국종 교수님을 만났군요.

“레지던트 3년 차였어요. 그때 가슴이 뛰었어요. 운명인지 ‘어, 나 이건가?’ 싶더라고요(웃음). 파견을 가보니 ‘세상에 이런 일을 하도록 허락받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숭고하게 느껴졌어요.”

외상센터에서는 의료진의 기지가 매우 중요하다. 환자 상태를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CT 찍을 시간도 없이 수술실에서 개복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허 교수는 “이럴 때는 손상된 장기와 혈관이 뭔지, 어떻게 손상됐는지 상상해 손놀림을 초 단위로 다르게 해야 한다”며 “어떤 흉기에 찔렸는지도 중요하기에 고기칼, 뼈칼, 햄칼 등을 주의 깊게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고 했다.

벨이 울렸다. 구급대원에게서 온 ‘응급 콜’. 예상했던 일이다. 이날 인터뷰는 세 번이나 중단됐다. “(환자가) 20분 뒤에 온다네요.” 허 교수가 “가봐야 한다”며 다급하게 일어났다. 콜이 떨어지면 의료진은 ‘소생실’에서 의료 장비를 준비하고 대기한다.

인터뷰 중인 허윤정 교수.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경증이라니 다행이네요.

“전화로 환자 상태를 파악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저는 제가 한가한 게 좋아요. 크게 다친 사람이 없다는 의미니까(웃음).”

소생실은 후덥지근했다. “덥죠? 피를 흘리면 체온이 떨어져 한여름에도 온풍기를 틀어 놔요.” 무영등 사이 수술대는 단 두 곳. “당직 의사와 간호사 모두 한 명에게 달라붙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두 명 이상 동시에 받기 어려운 이유”라고 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땐 무슨 생각을 합니까.

“이 사람이 왜 다쳤는지 신경 쓰지 말고 찢어진 혈관만 찾자. 그 생각만 해요. 잘못 없는 사람이 음주 운전 역주행 차량에 치였다고 생각해 보세요. 가족들은 절 붙들고 ‘살려달라’ 애원하고요. ‘내가 못 살리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을 지워야 수술을 제대로 할 수 있어요.”

-죽음을 가까이서 접할 텐데 정신적으로 힘들진 않나요.

“자주 도망치고 싶었어요. 특히 사망 선언을 할 때요. 단 1초도 준비할 시간 없이 얼굴도 못 보고 이별하는 경우도 있어요. 유족에게는 의사인 제 얼굴이 평생 기억되지 않을까요? 평온한 일상을 박살 내는 말이, 제 입을 통해 나오니까.”

-극복 방법도 찾았나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예요. 내 공포와 슬픔은 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최대한 온기가 남아 있을 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권해요. ‘안 본다’ ‘못 본다’는 분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단호하게 말해요. 1분 뒤면 온기도 남아 있지 않을 거라고.”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좀 다른가요.

“글쎄요. 일반 병실로 옮기기 전까진 ‘살려도 살린 게 아니다’라고 생각해요. 고비를 넘겼지만 다음 치료를 계속 준비하죠. 그래서 환자나 보호자 앞에서는 감정을 절제합니다. 제가 친절한 의사로 보이진 않을 거예요.”

-지치는 순간도 있을 텐데.

“드물지만 자살을 시도한 환자가 ‘왜 살렸느냐’고 항의할 때 힘이 빠져요. ‘내가 얼마나 힘든지 네가 아느냐’ ‘네가 뭔데 날 살리냐’…. 그래도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당신이 열 번 더 실려 와도 당신을 살리겠다고.”

허윤정 교수가 단국대병원 충남권역외상센터 앞에 서 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친절하지 않지만 친절한

“밥 먹어 봤어요? 쌀밥 괜찮아요?” “(다리에 재활 기구 착용한 환자에게) 휠체어 탈 만해요? 힘들어도 움직여야 해요. 욕창 생겨”…. 회진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외상 중환자실·소생실에서 본 모습과 달랐다. 농담을 건넸고 ‘재활 제대로 하라’며 혼내기도 했다.

-어라,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일반 병실에서 외상 환자는 신체를 회복하고 일터로 복귀하기까지 지난한 싸움을 해요. 그때부터는 관심을 갖고 감정도 보여주는 편이에요. 환자 마음을 이해하는 게 중요해지거든요.”

-왜요?

“생사를 넘나들던 응급 수술실에서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손끝 통증 같은. 환자가 용접공이었는데 골반을 다쳐 걷는 게 힘들어졌다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허 교수는 최근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라는 에세이를 펴냈다. 외상센터에서 5년간 일하며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와 한국의 의료 현실을 담았다.

-책을 쓸 정도로 한가한가요.

“현실을 알려야 사회가 바뀌니까요. 환자가 없는 날에는 한가할 때도 많아요. 그런 날 당직실에 틀어박혀 썼어요. 일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의 구분이 명확해요. 일이 이어지는 시간이 길고 밀도가 높아 몸이 부서질 것 같은 날도 많지만요. 이국종 교수님을 통해 처음 외상센터가 알려졌을 때 보다는 나아졌어요.

-책을 어떻게 쓰게 됐나요.

“반복적으로 들어오는 환자를 보며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같은 사고를 당하고, 억울한 칼부림에 휘말리고, 자해를 하는 사람들이요. 이런 문제는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반복적으로 들어온다고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4년 차예요. 그런데 하청 업체, 또는 하청의 하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안전모 같은 보호 장비도 없이 사고를 당해 실려 와요. ‘회사에서 안전 장비 받았느냐’ 물으면 그게 뭐냐고 되묻기도 하죠. 이곳에선 사회적 약자나 사각지대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옵니까.

“교통사고가 나도 에어백 빵빵 터지는 좋은 차 타고 있으면 덜 다쳐요. 화물차는 어떨까요. 승용차와 달리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앞 범퍼가 없죠. 또 핸들이 복부와 수평을 이루고 있어 들이받으면 그대로 핸들이 배를 파고들어요.”

-외상이 심하겠네요.

“창자가 다 끊어져요. 그분들은 종일 격무에 시달리며 도로에서 하루를 보내요. 대리운전 기사들이 오갈 때 주로 타는 전동 킥보드는 더 위험해요. 몸을 보호해 줄 껍데기조차 없으니까.”

허윤정 교수가 한 외상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우리 다시 보지 말아요

외상 환자를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뭘까. 허 교수는 “사회 시스템과 병원 인프라, 그리고 의료진”이라며 “3박자가 맞아떨어지면 환자가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없다”고 했다.

-1년간 의정 갈등으로 협진이 어려워졌나요?

“외상센터는 다른 과 동료와의 협진이 중요해요. 부러진 뼈는 정형외과, 얼굴은 성형외과가 봅니다. 그런데 저를 도와줄 의사가 없는 거예요.”

-책에 ‘경남 사천에서 천안까지 200km를 실려 온 중증 외상 환자’ 이야기가 있던데.

“중간에 있는 외상센터 5곳이 모두 마비됐다는 뜻이에요. 전라도나 경상도에서도 연락이 와요. 외상센터는 ‘상태가 가장 위중한’ 환자를 받아요. 그런데 살릴 자신이 없다면? 무리하게 받았다가 소송 걸리면?”

허 교수는 “요즘은 가장 마지막에 환자 얼굴을 본 의사가 처벌을 받는다. 어떤 센터에서 환자를 받고 싶겠느냐”며 “결국 환자가 큰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했다.

-환자 받기 겁나겠네요.

“젊은 후배들에게 외상외과를 권할 수가 없어요. 근무 조건과 처우는 열악한데 소송 리스크는 크니까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인력난에 허덕일 거예요(그녀는 5년째 이 외상센터 막내다).”

-최근 국회에도 나가 외상센터 상황을 증언하고 있는데 ‘의사가 사람이나 살리지 정치한다’는 비판은 없나요.

“저도 치료에만 전념하고 싶어요. 근데 우리가 그렇게 하면 병원이 망해요. 환자가 들어오면 무슨 보험을 적용받는지, 자동차 보험인지 산재 보험인지 건강 보험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수가 때문에 못 쓰는 거즈나 약도 있어요. 말이 안 되잖아요, 제일 좋은 약을 다 때려 써도 모자랄 판에.”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미용 수술보다 수가가 적은 경우도 있다고요.

“환자를 살릴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예요. 일주일간 개복 상태로 치료하던 환자가 있었어요. 근데 수술료를 산정할 땐 무조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정한 수술명 중 하나를 골라야 해요. 외상 환자는 수술 방법과 과정이 복잡해 그중에서 고를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 환자도 그랬어요.”

-어떻게 했나요?

“찢어진 상처를 꿰매 봉합하는 ‘복부 봉합술’을 고를 수밖에 없었어요. 개복한 모양대로 배가 굳어져 당겨 오는데 오래 걸리고, 감염에 취약해 음압 상태에서 복부의 액체를 계속 빨아내야 해요. 그렇게 해도 성형 수술이나 동물 수술보다 수가가 적은 경우가 많아요.”

그녀는 답답해 보였다. 지난 1년간 고충과 이런 이유가 겹쳐 사표도 여러 번 던졌다.

-그럼에도 외상센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사실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어요. 지난 1년은 더 그랬고. 하지만 계속 실려 오는 환자를 외면할 수 없었어요. 외상센터에선 전문의 한 명의 공백은 너무나 커요.”

-계속 수술대 앞에 서도록 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외상 팀원들이 제 뒤를 지켜준다는 믿음. 외상 환자 1명을 살리려면 수십 명의 노력이 필요해요.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아요. 그 마음을 알기에 차마 떠날 수 없었어요. 일단 눈앞의 환자를 살려야 하니까. 환자가 고비를 넘기고 일어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자살을 시도하고 이송되는 어린 학생들이 점점 늘어난다고 들었습니다.

“어린 학생을 많이 봐요. 아이가 건강한 상태로 내 곁에서 살아 숨 쉰다는 게 가장 큰 축복이에요.”

다시 ‘콜’이 들어왔다. 허 교수는 황급히 소생실로 뛰어갔다. 그녀가 살려낸 환자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우리 다시 보지 말아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