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드 나하린이 안무한 '데카당스' /서울시발레단

반원형으로 배치된 의자에 무용수들이 앉아 있었다. 강렬한 타악, 노래와 함께 의자를 활용한 춤이 펼쳐졌다. 빠른 속도로 같은 동작을 하다가도 몸을 뒤로 크게 젖혔다가 앞으로 돌아오는 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파도 타기를 반복했다. 한 무용수만 계속 바닥에 엎어지며 변주를 만들었다. 나중엔 모두 슈트를 벗어 던졌고 구두도 허공을 가로질렀다.

서울시발레단이 올린 ‘데카당스’(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는 드물고 귀한 춤으로 무대를 채운다. 팽팽한 제스처, 떨리는 듯 폭발적인 몸짓, 생동감 있게 미끄러지는 동작…. 이스라엘의 세계적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은 낯설지만 매혹적인 무용 언어를 구사했다. 팔다리는 자유롭게 던졌고, 몸통은 비틀었고, 척추는 뱀처럼 꿈틀거렸다.

그런데 공연이 멈추더니 객석에 불이 들어왔다. 한 무용수가 말했다. “공연을 이어가기 위해 잠깐 일어나 주실래요?” 영문을 모르는 채 관객 모두가 기립했다. “연봉 3억원 이상인 분은 앉아주세요.” 앉고 싶었지만 아무도 앉지 못했다. 다들 허탈하게 웃으며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번지점프를 해본 적 있는 분은 앉아주세요” “증손주가 있는 분은 앉아주세요”….

오하드 나하린이 안무한 '데카당스' /서울시발레단

직감했다. 이 또한 무용의 일부구나. 그런데 예닐곱째 지시에 이르자 관객 대부분이 착석했다. “지금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은 앉아주세요” 말한 때였다. 그래도 계속 서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정말 자기 일을 사랑하는 이들 표정을. 이날 최후의 1인은 지난주에 생일을 맞은 여성. 그 관객은 무대로 초대돼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안무는 움직임에 질서를 부여하고 구조화하는 행위다. 일상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안무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초등학교 신입생은 수업 시간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부터 배운다. 국민 체조, 우측 통행도 일종의 안무다. 나하린은 “익숙한 한계를 넘어서라”고 강조한다. ‘데카당스’에서 춤이 멈춘 저 구간은 무용수는 잠시 숨을 고르게 하고 관객은 서 있는 경험을 하도록 고안한 안무였다.

공연을 보는 내내 세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몸, 감옥, 춤. 나하린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마치 감옥처럼 몸 안에 갇혀 있다고 느낀 적 없나요? 춤을 추세요.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입니다. 춤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에는 무용수들이 관객 손을 잡아 무대로 이끌었다. ‘몸에서 탈출한 춤’이 폭죽처럼 터졌다. 탈옥수 A, 탈옥수 B, 탈옥수 C….

오하드 나하린이 안무한 '데카당스' /서울시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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