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생으로 10년 동안 시장을 누비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비29(B29)’. 2009년 다시 대중 앞에 섰지만 3년 만에 또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13년 만인 올해, 초창기와 비슷한 모습으로 컴백했다. 팬 3000명이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편지를 보내며 읍소했기 때문이다. 아이돌 그룹 이야기냐고? 아니다. 농심이 재출시한 과자 ‘비29’ 이야기이다.
국민학교 시절 엄마를 졸라 사 먹던 과자, 할머니·할아버지가 몰래 건네던 과자 같은 추억의 제품들이 복귀하고 있다. 전 세계 산해진미를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는 세상. 가난하고 힘들던 시절에 먹던 상품들이 왜 지금 부활하고 있는 것일까?
농심이 창사 60주년 기념으로 비29를 다시 내놓은 가장 큰 이유는 ‘팬클럽’이었다. 네이버에 개설된 ‘카레맛 과자 비29 재생산을 바라는 카페’가 바로 그것이다. 2007년 시작돼 18년 차 온라인 커뮤니티로 회원은 3000명이 넘는다. 회사원, 사업가 등 사회에서 멀쩡하게 일하고 있는 이들이다. 2010년 이 카페에 가입했다는 화학기기 분석가 유경원(45)씨는 “어린 시절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이 모여서 재출시까지 이끌어내 뿌듯하다”며 “다시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집 앞 편의점 몇 군데를 돌며 한 박스를 구해 아이들과 나눠 먹었다”고 말했다.
1980년에 출시돼 9년 만에 단종됐던 ‘크레오파트라 포테토칩’도 36년 만에 되살아났다. 이 과자를 불러낸 것은 제품명을 주술처럼 중얼거린 젊은이들. 술자리 게임 ‘안녕, 클레오파트라’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음역대를 높여가며 대결하는 이 게임은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다시 회자되더니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부른 ‘아파트(APT.)’가 세계인의 술자리 게임이 되면서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청년들이 제품명을 외쳐준다면 마케팅 효과는 확실한 셈.
오리온도 ‘팬레터’에 대한 답장으로 단종됐던 과자를 재출시한다. 홈페이지 고객센터에 “다른 과자를 먹어봐도 그 과자만 생각난다” “입덧 중인데 꼭 먹고 싶다”는 일종의 연서(戀書)가 한 달에 수십 건씩 쌓이기 때문이다. 2016년 사망(?)했던 ‘오!감자 스윗칠리소스맛’과 ‘포카칩 스윗치즈맛’은 8년 만에 부활했고, 작년 6월 단종됐던 츄잉캔디 비틀즈는 6개월 만에 시장에 돌아왔다.
이렇게 목소리 높여 바람을 관철시키는 소비자들을 보이슈머(voice+consumer)라 부른다. 옛부터 ‘충성 고객’은 귀했던 게 사실. 최근 추억의 제품이 소환되는 현상에 대해 업계에서는 “고물가로 소비 심리가 얼어붙는 상황에선 이미 레시피를 갖고 있어 연구·개발비를 아낄 수 있는 데다 성공한 전력이 있는 상품을 출시하는 게 안전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재출시가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추억은 언제나 미화되기 마련이고, 사람의 입맛 역시 달라지기 때문이다. “맛이 변했다”고 외면받거나 반짝 인기에 그칠 위험성도 있다. 허니버터칩·먹태깡 같은 흥행작이 뜸한 요즘 과자 업계가 게으르게 과거의 영광에 기대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런들 어떠하리, 내 어린 시절 추억을 돌려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