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네요.” “원하지 않는답니다.” “지긋지긋해요.” “이제 와 뭐가 달라진다고….”
최근 한 달간 이런 말을 매일같이 들었다. 적과 싸우다 전사한 순국 용사 가족과 생존 장병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때마다 돌아온 답변이다.
3월 26일 천안함 폭침 15주기와 28일 제10회 서해 수호의 날을 앞두고, 기자는 그 의미를 생생히 들려줄 인물 스토리를 발굴하려 했다. 물망에 올린 후보는 약 15명.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인생의 새 장을 펼친 사람, 가급적 덜 알려진 인물이 대상이었다. 당사자나 다리를 놔줄 만한 주변 인사들과 한 달여 주고받은 통화와 문자, 이메일은 280여 통.
그러나 단 한 건도 성사되지 않았다.
취재 영역이 정해지지 않은 기자들에겐 섭외가 일의 절반이다. 그게 잘되지 않아 기사를 못 내는 건 다반사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거절의 이유가 충격적이었다. 대대로 국가 영웅 대접을 받아야 할 이들이 무력감과 두려움에 숨죽여 살고 있었다. 한국을 원망하고 떠나기도 했다. 가장 중립적이고 신성하게 다뤄져야 할 군(軍)을 상대로 일상화된 정치적 편 가르기와 폭력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부끄러운 취재 실패기를.
“민감해서… 인터뷰 안 합니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故) 조천형 상사의 유족. 당시 백일 갓 지난 아기였던 딸 시은씨가 지난 2월 학군통합장교 임관식에서 합참의장상을 받고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홀로 갖은 고생을 하며 딸을 또 군인으로 키워낸 어머니 강정순씨와 함께 모녀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조시은 소위는 여러 경로로 접촉했지만 고사했다. 연락이 닿은 어머니 강씨도 마찬가지였다.
“저희는 조용히 살고 싶어요.” “부군에 이어 따님이 나라를 지키게 됐지요. 많은 분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전 옛날 일 떠올리는 것 자체가 싫고요, 딸도 나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2010년 천안함에서 희생된 고 김태석 원사의 딸로 역시 해군 소위 임관을 앞둔 김해나씨도 인터뷰를 거절했다.
어머니 이수정씨는 강씨보다 좀 더 명확히 말했다. “인터뷰 몇 번 해봤는데 똑같아요. 15년을 이야기해도 바뀌는 것도 없고요. 지쳤어요.” “많이 힘드셨군요. 다 말씀해보시지요.” “이제 와 무슨 소용 있어요. 전 앞으로 애들이 제대로 자리 잡을까 그게 걱정이에요.”
천안함 유가족 중엔 유독 암 환자가 많다고 한다. 아버지 고 정종율 상사에 이어 2021년 어머니까지 암으로 잃은 대학생 정주한씨. 사병 입대를 앞둔 그도 고민 끝에 인터뷰를 거절했다.
취재 과정에서 20대 초반에 불과한 이 순국열사 유자녀들이 과거 공식 행사나 언론에 나왔을 때 뜻하지 않은 인신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들었다. “아빠 팔아 출세하느냐” “뭘 안다고 윤석열 정권을 돕느냐”부터 외모 품평까지. 당황하고 움츠러드는 게 당연했다.
나라 지켜내고 받은 모욕
천안함 생존자 중 가장 크게 다친 신은총 예비역 하사의 근황을 추적하다가, 그가 2년 전 어머니와 함께 뉴질랜드로 이주한 사실을 알게 됐다.
신 하사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란 희귀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문재인 정부의 집요한 천안함 재조사와 상이 등급 하위 판정에 분노, 휠체어를 타고 거리 시위에 나선 게 국내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는 치료에 좀 더 나은 기후, 그리고 장애 입은 용사를 백안시하지 않는 ‘문명국가’를 택했다.
천안함 폭침 두 달 뒤인 2010년 5월의 어느 날. 기자는 당시 출입하던 민주당 공보실에서 당직자 대여섯 명과 함께 TV 속보를 보고 있었다.
바다에서 건져낸 북한 어뢰 위 파란색 ‘1번’ 사인펜 글씨가 카메라에 잡히자 그들은 일제히 폭소를 터뜨리며 “야~ 1번이란다, 1번!” “이명박이 북풍 몰이 해보겠다고 조작을 저렇게 티 나게 한다”고 비아냥댔다. 지난 15년간 천안함 생존자와 유가족이 겪은 일들은 그 장면의 끝없는 되감기처럼 보였다.
진보 진영은 국제합동조사단의 조사도 무시한 채 ‘좌초설’ ‘경계 실패설’ ‘자작극설’ 등 각종 음모론을 띄웠다. 천안함 생존 장병을 ‘패잔병’이라 부르며 “얼마 받고 입 다물었느냐” “양심선언을 하라”고 들쑤셨다.
“함장이 부하들 다 죽이고 무슨 낯짝으로” “천안함 ‘폭침’ 용어를 쓰는 언론은 가짜” “우리가 깔아놓은 기뢰를 격발시킨 게 아닌가”라고 한 이들이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고 의원 배지를 달았다.
서해수호관에서 13년째 방문객 수백만 명에게 천안함을 안내한 김록현 관장은 “직접 보면 좌초설은 말도 안 된다는 걸 바로 이해한다. 어뢰로 인한 수중 폭발로 찢긴 상처를 보고도 음모론을 거론하는 관람객은 이제 별로 없다”면서도 “보고도 안 믿는 분들은 여전히 있다.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함과 세월호, ‘10 대 250’
천안함 생존 장병의 91%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진단받거나 치료받은 적 있다고 한다. 미국 베트남전 참전 용사(30%)나 이라크전 용사(13%)의 PTSD 진단율을 크게 뛰어넘는다. “자살을 생각한 적 있다”는 비율도 이라크전 참전자가 5%인 데 비해 천안함 생존자는 50%나 된다.
트라우마 회복은 ‘사회적 지지’ 여부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2020년 예일대 연구에 따르면 참전 경험의 악몽이나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고 따돌림이나 비난을 받지 않은 군인들은 PTSD나 자살 충동에서 쉽게 벗어났다.
반면 천안함 생존 장병은 “‘천안함이 무슨 벼슬이냐’는 막말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우린 쓰레기 취급이다. 감출 진실이 없는데 뭘 감춘다고 자꾸 몰아세운다”고 했다.
한 생존 장병은 통화에서 “언론이 우리에게 바라는 모습이 뭔가. ‘돈 받고 입 다문다’고 조롱하거나, 불쌍하고 착한 피해자로 살라거나 둘 중 하나 아닌가”라고 했다.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 기울어진 학술·문화계 지형도 새삼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천안함에 관해 나온 책은 10권. 그나마 두세 권 빼곤 다 천안함 음모론에 선 것들이다. 반면 4년 뒤 세월호 참사 관련해선 10여 년간 수기부터 동화책까지 250여 권이 출간됐다.
혹자는 “천안함이나 세월호 피해자나 똑같이 반대 진영의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특별법 유무나 보상금 규모를 논할 것도 없다. 어느 쪽이 집요한 따돌림을 받고 숨어 사는지 구분이 안 된다면.
천안함 폭침 당시 작전관 출신으로 신형 천안함 함장이 된 박연수 중령.
지난해 취임 때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는 것이 먼저 간 전우들이 내게 남겨준 사명”이란 일성으로 국민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그는 1년이 지난 지금 “인터뷰 강력 미(未)희망”이란 답을 보냈다. 천안함이란 복잡한 역사를 대표하는 듯한 입장이 되며 느낀 중압감이 큰 듯했다.
“누가 軍을 이렇게 만들었나”
천안함재단 관계자는 유족과 생존 장병이 위축된 데 대해 “하도 데어서 그렇다”고 잘라 말했다. “추모식에 (원내 제1당의)사람이 안 오는 건 물론이고 작년부턴 조화(弔花)도 안 보내더라. 나라가 양극단으로 갈려서… 한두 번 당했어야지.”
그랬던 그는 사흘 뒤 통화에선 “그 얘긴 못 들은 걸로 해달라”고 했다.
취재를 도와준 한 지자체 직원은 “북한과 싸운 우리 장병과 가족이 받는 대접을 보라. 어느 나라가 이런가. 간첩이 나라를 장악했다는 얘기가 맞는 것 같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해군 장교 출신인 모 대학 교수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군인들은 정치를 떠나 국민이 순수한 마음으로 대우해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정권에 따라 추켜세우거나 깎아내리니, 그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는 “더군다나 계엄과 탄핵 이후 극도로 불확실한 정국 아닌가. 군은 야당이 씌운 ‘계엄 하수인’이란 낙인을 벗기 위해 필사적으로 정치 중립을 지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군 소식통은 “지금 엉망진창이다. 장병 사이에 지휘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계엄도 계엄이지만,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이 야당 의원 유튜브에 나가 떠든 게 결정타였다”고 전했다.
제2연평해전 유족회장인 고 서후원 중사의 아버지 서영석씨. “23년 전 아들들 영결식에 김대중 대통령은 오지 않았고, 동해에선 금강산 가는 배가 떠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NLL(북방한계선) 지키다 죽은 장병을 두고 김정일 만나 ‘NLL은 괴물’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 정부는 서해교전을 연평해전으로 올렸고, 또 승전식으로 올려줬다. 하지만 그것도 말만 풍년이지, 피부에 와 닿는 건 없더라”고 했다.
“우리 죄가 있다면 자식 낳아 공부시켜 군대 보낸 겁니다. 결국 이렇게 됐어요. 이런 나라, 누가 지키겠다고 나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