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방배동의 지문 적성 검사 회사에서 어린이가 지문을 찍고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에 사는 치과의사 김혜연(44·가명)씨는 최근 아홉 살과 여섯 살 두 자녀의 ‘지문(指紋) 검사’를 받았다. 아이들의 열 손가락 지문과 손금을 찍고, 부모의 양손 엄지·검지 지문을 찍어 아이들의 성향과 양육 스타일, 미래 진로 등을 탐색하는 상품이다. 김씨는 “주변에서 추천해 긴가민가하며 했는데 완전 족집게더라”라며 “둘째는 ‘고집이 센데 나중에 엄마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겠다’면서 그럴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려줬다”고 말했다.

분당에 사는 이민지(42·가명)씨도 지난해 주변 아이 10명을 모아 지문 검사를 의뢰했다. 일종의 ‘공동 구매’. 아이 10명의 지문을 한꺼번에 찍어가고 나중에 개별 전화 상담 등을 했다고. “10명 중에 저희 딸과 조카의 성향이 아주 유사하게 나왔어요. 나머지 8명은 제각각이었고요. 유전적인 측면이 분명 작용한다는 얘기겠죠.”

‘지문 적성 검사’가 유행하고 있다. 지문에 담긴 유전학적 정보를 분석해 성격이나 특성, 맞춤형 진로 탐색까지 가능하다는 콘셉트. 2010년 언저리 영국·대만 등에서 유입되기 시작해 적성검사의 한 형태로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

◇미신일까 과학일까

지문으로 아이의 성향과 부모와의 양육 궁합, 미래 직업까지 내다볼 수 있다니 ‘미신’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민지씨는 “데이터 값을 해석한다는 점에서 사주풀이와 비슷하다”며 “결과를 맹신하지는 않지만, 아이의 교우 관계 스타일까지 꽤 정확하게 간파해 신기했다”고 말했다. 가령 이씨의 딸(8)은 바이올린 연주를 잘하는데, 그건 음악적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조작 능력’이 우수하기 때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음악은 진로가 아닌 취미로 해야 한다는 뜻. 논리와 조작 능력도 뛰어나면 외과 의사 같은 직업이 맞고, 논리는 없는데 조작 능력이 있으면 지게차 운전이 어울린다는 식이다. “아이의 학습 스타일까지 일러주니 통제적인 부모가 돼야 할지, 허용적인 부모가 돼야 할지 판단할 수 있더라고요. 앞으로 꽤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콩심콩 팥심팥, ‘바람의 아들’이 ‘바람의 손자’를 낳는다. 피는 못 속인다는 게 오래 쌓인 인류의 지혜다. 지문 적성 검사도 학문적으로 유전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쌍둥이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성격에 대한 가정환경(부모의 교육 수준·수입·양육 태도 등)의 영향은 10% 미만이다. 타고나는 ‘천성’이 있다는 것. ‘지능’에 대한 유전적 영향은 유아 때 20%에서 노인이 되면 80%까지 높아진다. 반면 창의성은 유전보다 환경의 영향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성격과 재능을 일찌감치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잠재력을 더 키울 수 있다는 게 지문 검사의 셀링 포인트다.

지문은 이미 수세기 동안 인간을 탐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17세기 이탈리아 해부학자 마르첼로 말피기가 최초로 지문의 무늬를 관찰·탐구한 기록을 남겼고, 19세기 말 영국 유전학자 프랜시스 갈턴(찰스 다윈의 사촌)이 지문의 분류 방법, 식별 가능성 등을 정리했다. 20세기 들어 베릴 허친슨이 지문의 모양·위치와 심리 특성의 연관성을 연구했다.

◇부부 관계, 회사 생활도 조언

‘제이미맘(극성 엄마)’과 ‘금쪽이’가 난무하는 세상, 양육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일 것이다. 최근 공중파 연예 프로그램에서 연예인 자녀 등이 지문 검사를 하는 장면이 노출되며 더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맘카페에는 지문 검사 ‘내돈내산’ 후기가 올라오고 있다. 온 가족이 검사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부모와 자녀 관계는 물론 부부 관계에도 조언을 얻을 수 있다고. 세 식구 모두 검사를 했다는 박모(40)씨는 “남편과 아들이 평소에도 비슷한데 자기 주장이 강한 내 성격이 두 사람과 크게 충돌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며 “부부 싸움을 할 때도 이 조언을 되새기게 된다”고 했다.

기업체나 초중고교에서 단체 검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적성·진학 상담은 물론 직무 적합도와 동료·상하 관계 등 직장 역학에도 참고할 수 있다고. 지문 적성 검사 업체 ‘아이파스’의 김용 대표는 “풀배터리 같은 ‘자기 보고식’ 검사는 그날의 컨디션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지문 검사는 결론이 명확하다”며 “타고난 기질과 후천적 개성을 파악하면 학업은 물론 여러 인간관계에서도 성공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가 북이라면 북채는 환경이다. 북에 맞는 북채로 두드려야 북을 망가뜨리지 않고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