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엔 공직자 탄핵이 잦다. 툭하면 탄핵, 그게 일상이다.
왜 그럴까. 한국에 유독 나쁜 공직자가 많아서?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끌어내릴 수 있는 국민 주권이 강해서? 그건 주관의 문제니 논외로 하자. 직접적인 이유는 탄핵이 너무 쉽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으니 손이 자주 간다.
우리의 탄핵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쉽다. 탄핵 대상과 사유가 광범위하고, 절차는 신속·간편하되 안전장치가 허술하며, 소추 주체인 국회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부담 없게 설계돼 있다. 이는 독재 정권을 극복하려던 1987년 체제의 산물. 지금 같은 여소야대나 의회 독재는 상상하지 못했던 때다.
결과는? 탄핵 소추 당한 국가 정상급만 4명. 정변이 잦은 페루와 공동 1위다. 최근 3년간 발의한 탄핵 소추안 30건 기록은 페루 할아버지도 못 따라온다. 글로벌 문화 영향력은 최고, 경제 규모는 10위권, 탄핵은 남미(南美) 스타일인 한국의 요지경.
탄핵당한 한국 정상급 4명
통계부터 보자. 세계 각국 의회에서 정부 수반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경우는 지난 160년간 40여 건.
1위는 페루다. 역대 대통령 4명에 대해 7건 통과돼 그중 3명이 파면됐다. 대통령이 취임했다 하면 탄핵당하는 나라다. 가장 최근 2022년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이 끌려 내려갔다.
공동 1위가 한국이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그리고 한덕수 총리까지 4명이 탄핵 소추됐고 지금까지 1명이 파면됐다. 1925년 임시정부 이승만 대통령 탄핵까지 치면 5명으로 한국이 단독 1위라고도 할 수 있다.
다음은 브라질. 대통령 3명이 탄핵 소추돼 2016년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까지 3명이 파면됐다. 미국에선 앤드루 존슨(1868), 빌 클린턴(1998), 도널드 트럼프(2021) 3명에 대해 탄핵 소추 4건이 통과됐지만 파면된 대통령은 없다. 리처드 닉슨(1974)은 탄핵 표결 전 자진 사퇴했다. 인도네시아에선 수카르노(1967)와 와히드(2001) 대통령 2명이 파면됐다.
이 나라들은 모두 대통령중심제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선 의회의 내각 불신임 결의에 따라 언제든 총리와 각료가 물러나 새 선거를 치를 수 있기 때문에 탄핵이란 개념이 무의미하다.
이 때문에 14세기 탄핵 제도의 종주국인 영국은 의회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래 탄핵이 사문화됐고, 독일도 실권자인 총리가 탄핵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일본은 아예 탄핵 대상이 ‘법관’뿐이다.
미국이든 프랑스든 중남미든 모든 대통령제 국가에선 ‘탄핵엔 정치적 성격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래서 탄핵 시작부터 종결까지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책임지고 맡는다. 하원이 탄핵 소추권을, 상원이나 상·하 양원(兩院)이 구성한 탄핵재판소가 탄핵 심판권을 가지는 식이다.
한국처럼 미국식 대통령제를 택한 나라가 정치 탄핵을 남발하면서 그 뒤처리는 죄다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에 맡기는 것, 그래서 마치 탄핵이 중립적이고 엄정한 사법적 판단의 결과인 것처럼 포장하는 건 희귀한 현상이다. 의회가 탄핵 절차의 기술적 부담이나 결과에 대한 정치적·법적 책임을 손쉽게 외부에 떠넘길 수 있는 구조다.
무죄 추정 원칙도, 공소시효도 무시
미국 하원 의회는 탄핵 소추 단계부터 엄격한 조사위원회를 열어 심도 있게 위헌·위법 여부를 심리한다. 프랑스도 특별위원회나 예심위원회 등을 열어 ‘위법에 의한 탄핵인지 정치적 탄핵인지’ 따지는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반면 한국 국회에선 소추 문턱부터 낮다. 탄핵 사유에 대한 별다른 조사나 수사, 특별검사 같은 절차가 없다. 헌법 제65조 제1항에 “공무원이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추상적으로 규정돼 있다. 제2·3항에도 소추에 필요한 재적 의원 수만 나온다.
이에 따라 단 한 번의 국회 본회의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이게 위헌”이라고 주장한 뒤 과반 찬성만 얻으면 통과된다. 비슷한 예를 찾자면 ‘도덕적 결격 사유’를 들어 재적 의원 40% 이상 찬성하면 탄핵되는 페루 정도.
국회입법조사처는 2020년 보고서에서 “위법·위헌의 정도나 중대성에 상관없이 국회의 조사를 재량으로 하고 있어 탄핵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탄핵 소추안 가결과 동시에 자동으로 해당 공직자의 직무가 중지되는 것도 논란이 많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규정한 헌법상 대원칙(26조 4항)과 충돌하기 때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기 때 두 번 탄핵당했지만 상원 심판에서 부결될 때까지 그대로 직무를 수행, 국정 공백이 없었다. 독일은 필요하면 헌재가 직무 정지 가처분 심판을 별도로 진행한다. 페루도 인도네시아도 소추만으론 직무가 정지되지 않는다.
주호영 국회 부의장은 “자동 직무 정지는 사실상 유죄 추정 원칙으로, 의원들이 꼴 보기 싫은 관료나 검찰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탄핵하는 장치가 된다”며 “최근 탄핵 소추안 30건 중 헌재 심판이 난 9건이 모두 기각된 게 그 방증”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은 위법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는 중에도 형 확정 전까지 직무를 유지하고 선거에도 출마한다. 반면 행정부와 검찰은 탄핵 소추만 당해도 국민 삶과 직결된 공적 업무가 장기 중단된다.
특히 이번처럼 ‘대통령 권한대행’과 ‘권한대행의 대행’까지 탄핵 리스트에 올린 건 남미 국가도 가보지 못한 경지다.
우리 헌법엔 선진국과 달리 탄핵 소추를 발의할 수 있는 기간도 명시돼 있지 않다. 사실상 공소시효 무제한. 지난해 민주당은 13년 전 한명숙 전 총리 뇌물 수수를 수사한 검사를 탄핵 소추했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언제든 과거사를 들춰내 공직 사회와 법조계를 겁박할 수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북 송금 의혹을 수사한 검사를 소위 ‘대변 사건’을 걸어 탄핵하기도 했다. 헌법학자인 정종섭 국학진흥원장은 “국회의원이 자기들 재판에 불리하다고 판·검사를 마구 탄핵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민주주의 흔드는 ‘정치의 사법화’
선진국에선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민이 선출한 최고 권력의 무게가 엄청나다. 통치자 개인이 아닌, 사회적 숙고 결과에 대한 존중이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처럼 선거와 법치, 삼권분립과 탄핵 제도 등 민주주의 시스템을 만들고 완성한 나라들이 여간해선 정상 탄핵이라는 카드를 꺼내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이들은 탄핵 과정 자체가 뿜어내는 막대한 사회 분열과 혼란, 국가 신인도 추락에 따른 민주주의 체제 훼손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래서 탄핵을 추진하더라도 최종 판단은 또 다른 선출 권력인 의회가 맡게 한다.
탄핵은 일반 징계로는 처벌이 어려운 공직자에 대한 최후의 처벌 수단이다. 정치적 변화 욕구를 담아내는 제도는 정기 선거다.
그런데 한국에선 선거 주기를 앞당기기 위해 탄핵을 남발하는 경향이 짙다. 특히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재판소로 툭하면 달려가 그 결정을 요구하는 건 ‘정치의 사법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 해결이라는 정치권 고유 기능을 사법부에 떠넘겨, 법이 특정 정파의 권력 도구로 전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킹핀정책리서치 오승용 박사는 “정치 세력 간 권력 경쟁 수단으로 사법부가 활용되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 현상이 심해진다”며 “우리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 불신이 동시에 진행되는 독특한 사례”라고 했다.
지난해 이종석 전 헌재 소장도 퇴임식에서 국민 기본권 심판에 집중해야 할 헌재가 줄 잇는 정치 탄핵의 최종 판단자가 되는 데 대해 “정치의 사법화가 나타나면 뒤이어 사법의 정치화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 이는 헌재 결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질서를 해칠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이 민주주의의 증거라는 건 중대한 착각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