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왕이다. 아니다. 안 사는 손님은 과객일 뿐이며, 때로는 밉상에 가까운 ‘손놈’도 있다. 그런 누군가를 왕으로 모시는 일은 그게 액션일 뿐이어도 지치는 일이다. 영업, 세일즈를 을(乙)의 업무라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이를테면 잘나가는 벤츠 딜러 윤미애(50)씨는 요즘도 손님을 배웅할 때 몸을 직각으로 접어 부동 자세를 유지한다. 저만치 사라질 때까지. “오늘은 차로 고객 모셔다 드렸어요. 안경을 옷소매로 닦으시더라고요. 운전대 잡은 채로 조수석 서랍 열어 손수건 꺼내드렸더니 ‘이야’ 감탄을 하셨죠.”

–너무 굽히는 거 아닌가요?

“입안의 혀처럼 맞춰드립니다. 돈과 자존감을 주시는 분이잖아요. 저한테는 계약서가 만병통치약이에요. 싹 풀려요.”

그의 직함은 메르세데스 벤츠 공식 딜러 한성자동차 강남 전시장 영업 전문 이사. 2011년 입사해 4년 만에 벤츠 500대, 7년 만에 1000대를 팔았고, 지금도 매달 10대꼴로 출고시킨다. 전국 판매 ‘톱10’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국산차의 두 배 넘는 고가 차량임을 감안하면 괄목할 기록. 초고속 영업팀장에 이어, 역시 여성으로는 가장 빨리 영업이사 자리에 올랐다. “남의 돈 받기 쉽지 않다는 사실만 알면 못 할 게 없죠.” 그의 인생 역정을 알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지난 13일 본인의 자동차 앞에 선 윤미애 딜러. 첫 차 코란도가 지금의 벤츠 S클래스가 될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일즈를 사랑합니다. 내가 한 만큼 돌아오잖아요."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乙 중의 乙이었던 소녀

1975년생, 중학생 때부터 일했다. “성호시장에서 장사를 크게 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집이 폭삭 망했어요. 아버지는 한량 같은 분이셨던지라…. 저는 봉제 공장에서 시다를 했죠.” 경기도 성남의 쓰러져가는 판잣집이 새 거처였다. “소변은 그냥 집 안 수도꼭지 아래서 해결했는데, 큰일을 보려면 언니를 깨워서 주민들이 공동으로 쓰는 화장실에 가야 했죠. 지금도 더러운 화장실이 너무 무서워요. 가방에 꼭 변기 시트지(紙)를 넣어 다녀요.”

–철이 일찍 드셨겠군요.

“제가 기억하는 ‘엄마’만 4명이에요. 남매끼리 성(姓)이 달라요. 가족 등본이 깔끔하지 않죠. 제가 5남매 중 넷째인데, 눈칫밥 덕인지 좋게 말해 센스가 발달한 편이에요.”

–어릴 적 꿈이 뭐였나요?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요. 말 그대로 꿈나라 얘기였죠. 방학 때 번 돈으로 학교 등록금 내고…. 그래도 밝았어요. 학급 오락부장이었어요. 다 못살았으니까, 다들 이러고 사는 줄 알았어요.”

야간 상고(商高)로 진학해 낮에는 봉제 공장 시다 반장으로 일했다. 1학년 첫 중간고사에서 반 5등을 했다. “얼떨떨했죠. 처음 아버지한테 칭찬을 받았어요. 짜장면까지 사주셨어요.” 이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일머리 좋고 빠릿빠릿한 그녀에게, 어느 날 새로 온 공장 전무가 뭔가를 건넸다.

–뭐였나요?

“편지요. 중국 고사에 나오는 ‘천리마’ 얘기를 써주셨어요. 춘추시대 백락이라는 사람이 시장통에서 수레나 끌던 볼품없는 말을 봤는데 그 말이 바로 천리마였다는. 네가 그 천리마라고. 크게 될 수 있다고. 공부하라고. 신문 사설을 매일 오려서 주셨어요. 제 은인이에요.”

인생 최초로 목표가 생겼다. 대학에 가고 싶었다. 결심을 밝히자 부친은 손찌검을 했다. 정신 차리라며. 그는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근처 입시 학원에 다니고, 수능을 치르고, 생활보호대상자 장학금을 타냈다. 집 근처 서울보건전문대학 사무자동학과에 입학했다. 그를 둘러싼 견고한 패배주의에 작은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저는 ‘될놈될’ 믿어요. 그래서 간절히 많이 바라요. 그럼 노력하게 되고,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고요.”

윤미애 딜러./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뭐야, 여자야?”

대학 졸업 후 1996년 세진컴퓨터랜드에 입사했다. ‘진돗개’ 컴퓨터를 만들던 그 회사. 특판영업팀에 배치돼 영업 지원 업무를 맡았다. 2년간 사수를 졸졸 따라다니며 보조했다. “그런데 큰 입찰을 앞두고 사수가 퇴사해 버린 거예요.” 실무 내용을 그나마 알고 있던 사람은 스물 셋의 여직원 윤씨 한 명뿐. 본부장이 그를 호출했다. “이번 건 직접 한번 해보는 것 어떤가?”

–기회였네요.

“염창동에서 강남까지 마을버스랑 지하철 번갈아 타고 장장 2시간에 걸쳐 고객 금융사로 갔어요. 어찌나 설레던지요. 영업이 천직인가 봐요. 담당자 만나서는 당돌하게 ‘식사 한번 하자’ 말하고는, 며칠 뒤 사당동 고깃집에서 담판을 지었죠.”

컴퓨터 800대 납품에 성공했다. 6억원 상당 매출. 영업의 맛에 눈을 뜬 것이다. 벤처 붐이 불던 2000년, 소규모 IT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영업뿐 아니라 미납 고객의 회사 사무실에 가서 돈 내라고 몇 날 며칠 죽치고 있다 수금하는 일까지 해 봤다”고 했다. 일당백이었지만 어딜 가나 수군거림이 따라다녔다. “뭐야, 여자야?” 여자 영업 사원은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설움도 많았겠습니다.

“어느 날 높은 손님이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마침 사무실에 저 하나였죠. 임원분이 저한테 ‘여기요, 차 좀’이라더군요. 회사 주차장이 좁았거든요. 이중 주차 좀 정리하고 오라는 얘기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한 소리 하더라고요. 커피 심부름 시켰더니 어디 갔다 왔느냐고요.”

–그래도 이겨내셨네요.

오해를 푸는 가장 빠른 방법은 실력이에요. 까라면 까는 걸 학습한 사람들과 경쟁하려면 단단해져야죠. 술도 더 먹고, 뭐든 더 과하게 했어요. 나중에 회사가 두루넷에 인수될 때 영업직은 딱 한 자리였는데, 그 임원분이 저를 콕 집어 추천해 주셨어요.”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

윤미애 이사가 손바닥 위에 벤츠 인기 차량 G바겐 장난감을 올려놓은 채 웃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몇 번 이직을 더 겪으며 갈증이 심해졌다. “하는 만큼 버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아무리 잘해도 월급은 비슷하잖아요. 어느 해에는 회사 매출의 90%를 제가 따낸 적도 있어요. 그래도 승진이 안 되더라고요.” 서른 살, 도전하기로 했다.

–뭘 하셨나요?

“보험 설계사를 두 달 했어요. 생명보험을 팔았죠. 그런데 친한 친구들도 슬금슬금 저를 피하더라고요. 너무 기분이 나빴어요. 그러다 수입차 딜러를 알았죠. 주변에 수입차 살 만한 사람이 없으니 불편할 것도 없고,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진입 장벽이 높을 것 같은데요.

“일단 웬만해선 신입을 안 뽑아요. 지인의 지인에 지인을 통해서 겨우 2005년에 BMW 목동 전시장 딜러가 됐어요. 네트워크가 없으니 근처 상가를 돌면서 전단을 돌렸어요. 텃세도 심했어요. 격 떨어진다고. 귀동냥을 해야 배우는데 남자들끼리는 사우나 가고, 저한테는 복사기나 고치라고 하고. 거의 반년간 매일 울었어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어릴 때부터 눈칫밥 단련이 됐잖아요. 구박하든 말든 주위를 얼쩡거렸죠. 선배들이 상담하면 괜히 옆에 가서 걸레질하면서 엿듣고. 막상 별거 아니더라고요. 솔직히 차에 대해서는 이미 고객이 빠삭하게 알고 와요. 얘기 잘 들어주고 신경 써주는 거, 그게 핵심이더라고요. 제 주 종목이죠.”

한번 얘기를 나누면 대화 내용, 체격부터 인상 착의까지 휴대폰에 기록한다. “기억해 주는 사람에게는 특별함을 느끼게 된다”는 지론. “전화만 잘 받아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전화는 기회예요. 언제든 무조건 받고, 못 받으면 반드시 콜백 합니다.” 선망의 공간이던 벤츠 강남 전시장으로 옮긴 뒤 그의 독기는 만개했다. 2012년 가을, E클래스 세단 출고 당일 고객이 “범퍼 색깔이 조금 다른 것 같다”며 인도를 거부하는 사고가 터졌다. 출산 예정일이었다.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정장 임부복에 부풀 대로 부푼 배를 안고 출고장을 누볐다. “저, 차 받을게요. 얼른 병원 가세요….”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군요.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다. 교통사고가 나도 저한테 전화가 와요. 어떻게 하냐고. 남의 돈 받는 게 쉽지 않죠. 간·쓸개 다 빼줘야죠. 어쩔 때는 제가 술집 마담이 된 기분도 들어요. 오만 얘기 다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고. 그러다 계약서 쓱 내밀고. 일이잖아요.”

◇여차하면 버스도 몰 수 있다

이제 그는 연소득 10억원을 올린다. 홍대 인근에 건물도 샀다. 인기 강연자로 초청되고, 지난 달에는 책까지 냈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 건물 ‘카 리프트’ 문제로 차량 구매를 망설이면, 근방 실외 주차장을 전부 뒤져 월 주차권 할인까지 얻어서 기어이 차를 팔아낸다. 지난해 벤츠 S580 모델을 간절히 원하는 모 세무 법인 회장이 있었다. 문제는 카 리프트 무게 제한이었다. 윤씨는 그 건물로 직접 차를 몰아 주차 관리인에게 “딱 한 번만 주차해 보겠다”고 사정했다. ‘삐삐’ 경보음이 울렸다. 며칠 뒤 또 갔다. “제가 차에서 내리니까 무게가 줄면서 경보음이 멈추더라고요.” 노력에 탄복한 회장은 계약을 체결했고, 지인까지 소개해 한 대를 더 팔아줬다.

–사람 상대하는 일, 힘들지 않은가요?

“의사는 매일 아픈 사람 만나고 변호사는 사건·사고 보잖아요. 저는 행복하죠. 차를 사는 가장 기분 좋은 시점에 만나니까요. 그래서 기운이 좋아요. 제 딸내미도 영업 시키고 싶어요.”

그는 말하자면 세상을 상대로 자신의 인생을 영업하고 있다. 일하는 가운데서도 한국방송통신대 학사,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석사, 전주대 부동산학과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손님도 그렇고 다들 제가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를 몰라요. 같은 환경이었다면 저 사람들은 나처럼 못 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자존감이 높아져요.” 2023년에는 1종 대형 면허를 땄다.

–대형 면허는 왜요?

“여차하면 버스 운전도 할 수 있잖아요. 저는 대리 기사도 할 수 있고 택시도 몰 수 있어요. 언젠가 어려워지더라도 저는 걱정하지 않아요. 바닥부터 올라왔잖아요. 저는 뭐든 팔 수 있거든요. 이 세상에는 할 일이 너무 많거든요.”

벤츠 공식 여성 딜러 윤미애 이사 인터뷰./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