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주말> 옥외전광판 (아무튼주말 게재 전 사용금지)- 영상미디어 이신영기자

지난 15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 무리의 외국인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방향이 특이했다. 보통 광화문광장 기념사진은 경복궁과 북악산을 배경으로 촬영하지만, 그들은 정반대였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왔다는 아미르(36)씨는 “저 거대한 전광판을 배경으로 찍고 싶었다”며 코리아나호텔 외벽을 덮은 초대형 디지털 옥외광고판을 가리켰다. 이 전광판은 가로 22m, 세로 60m로 면적(약 1300㎡)이 농구 코트 3개를 합친 것과 비슷하다. 아미르씨는 “광화문광장 어디서나 전광판이 보이더라”며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도 가봤지만 그보다 압도적인 것 같다”고 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코리아나호텔 외벽 디지털 옥외광고판을 촬영하는 여성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옥외광고는 경기 불황으로 꽁꽁 얼어붙은 광고 시장에서 드물게 성장세다. 초고화질 디스플레이 등 외형적 변화뿐 아니라 빅데이터·인공지능 등 정보통신 기술과의 융합을 통한 디지털화에 성공하며 새로운 매체로 진화한 덕분이다. 뉴욕 타임스스퀘어, 런던 피카딜리서커스, 오사카 도톤보리 같은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며 정부가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을 늘리고 있어, 디지털 옥외광고의 성장 속도에는 앞으로 더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디지털 옥외광고가 즐비한 강남역 인근 강남대로.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프로그래매틱 기술’ 만나 환골탈태

옥외광고 시장은 2017년부터 연평균 약 7%씩 커지고 있다. 한국지방재정공제회 한국옥외광고센터가 발간한 ‘2024 옥외광고통계’에 따르면, 옥외광고 시장 규모는 2022년에 4조원을 넘었다. 2024년에도 4조3017억원으로 성장세를 유지한 것으로 추산된다.

디지털 옥외광고가 특히 호황이다. 2022년 매출액이 1조2862억원으로 전년 대비 33.9% 증가하며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2023년에는 1조5072억원으로 17.2% 불어나면서 전체 옥외광고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이 추세는 세계적으로도 비슷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7년 세계 디지털 옥외광고 시장은 166억달러(약 24조원)로 2020년 대비 2배로 커질 전망이다.

인쇄·방송 광고와 함께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전통 매체)’로 분류되던 옥외광고는 ‘프로그래매틱 기술’과 만나며 타기팅이나 성과 측정이 어렵다는 기존 옥외광고의 한계를 극복하고 혁신적 뉴 미디어로 진화했다.

광고 업계 관계자는 “프로그래매틱 기술은 머신러닝(기계학습)·빅데이터 분석 등으로 광고 타깃을 설정하고, 보행자 시선 움직임으로 광고 주목도를 확인하는 ‘시선 추적 분석 기술’이나 날씨·교통 상황에 따라 광고 소재를 실시간 조정하는 ‘DCO’ 기술 등을 적용한다”며 “디지털 옥외광고로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춤한 광고 송출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국내 화장품 업체 마케팅 담당 임원은 “홍대 앞 매장 인근 건물에 디지털 옥외광고를 내보냈더니 손님 유입에 직접적으로 효과가 있었다”며 “광고비는 다른 매체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광고 수정은 쉬워 가성비가 높다”고 했다.

CJ ENM 계열 메조미디어는 최근 트렌드 보고서에서 “디지털 옥외광고는 대형 화면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재미를 주는 데다 관심사나 동선에 따라 맞춤 광고를 송출할 수 있다”며 “온·오프라인 광고 매체를 적절하게 융합한다면, 광고 피로도를 낮추면서 전환율(유도된 행위를 한 소비자 비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신분당선 강남역 역사 내 설치된 디지털 옥외광고.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옥외광고물 규제 완화

옥외 전광판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말 서울 광화문과 명동, 부산 해운대 일대를 제2기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으로 지정한 것도 호재다. 세계적 관광 명소 조성을 목표로 모양, 크기, 색깔, 설치 방법 등 옥외광고물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지역을 확대하는 추세다.

2016년 서울 강남 코엑스 일대가 최초로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으로 지정돼 크기나 형태가 다양한 옥외광고물 20여 개가 설치·운영되고 있다. 일각에서 지적하듯이 이른바 ‘빛 공해’는 풀어야 할 숙제다.

광화문에는 코리아나호텔 외에도 KT, 교보생명, 동아일보, 세종문화회관, 동화면세점 등이 디지털 옥외광고판을 설치했거나 설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몇 년 뒤면 그 일대가 뉴욕 타임스스퀘어처럼 대형 전광판으로 꾸며진 관광 명소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이 추세는 자유표시구역으로 지정된 곳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옥외광고가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