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물은 마데이라라고, 그래서 3월에는 마데이라를 마셔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그 글을 보고 마데이라를 마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3월이 끝나기 전에 말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꽤 여럿에게서. 그 말을 듣고 나도 마데이라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잊고 말았다. 어느 시기는 어느 사람과 보내듯 어느 시기는 어느 술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흘려보냈듯이 마데이라도 흘려보냈고 지금 내게는 다른 술이 있으니.
요즘 나의 술은 ‘어부의 물’이다. 요즘 자주 마시니 4월의 물이라고 해도 되겠지. 어부의 물은 내가 지은 이름이 아니라 업장에서 지은 이름이다. 지난달 광장시장에서 열었던 한 달짜리 시한부 가게였다. 지금은 없는 곳이라는 말. 멕시코식 물회와 멕시코식 해물 라면에 본 적이 없는 테킬라 칵테일을 판다기에 가보고 싶었다. 그 칵테일 이름이 어부의 물이다.
왜 어부의 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절묘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멕시코의 어부가 배 위에서 슥슥 만들어 먹던 것에서 유래했는지 아니면 ‘멕시코의 어부가 마셨을 법한 느낌의 술이지 않아?’라며 만드신 분이 좌중의 동의를 구하고 만장일치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쯤 마셔보고 싶은 이름이 아닌가?
그러니까 3월이었다. 우리는 광장시장의 포장마차에 둘러앉아 어부의 물 한 잔씩을 받아 들었다. 머리 위에는 ‘멕시카노스’라는 글자가, 포장마차 몸체에는 ‘멕시코식 물회’ 이미지가 붙어 있던 그곳에서. 빨간 물회와 초록 물회 중에서 우리가 시킨 것은 초록 물회(‘아구아칠레 베르데’라고 한다고)였는데 어부의 물과 잘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라임을 듬뿍 넣으면 맛있다고 하기에 라임을 듬뿍 짜 넣었다. 물회에도, 어부의 물에도.
어부의 물 테두리에는 붉은 소금이 묻어 있었다. 마르가리타 잔에 묻어 있는 하얀 소금의 변주라고 생각하심 되겠다. 잔 테두리에 소금을 묻혀내는 이런 걸 ‘스노우 플레이크’라고 하기에 ‘세상 어딘가에는 빨간 눈이 내릴까?’라는 생각도 잠시. 파타고니아에 갔다 왔던 사람은 분홍색 눈을 봤다고 했는데 빨간 눈은 아무래도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잠깐. 이계(異界)에나 있으려나? 고추이거나 파프리카 말린 거를 넣어 붉게 만들었을 그 소금은, 우리를 어부의 물로 빠져들게 했다. 퐁당.
테킬라를 넣은 칵테일을 이렇게 맛있게 마셔본 적이 있나 싶었다. 테킬라의 맛이 물처럼 부드럽게 흘러 들어왔다. 게다가 그 냄새! 아가베의 쿰쿰한 맛이 치고 올라오는데 좋아서 감탄했다. 블루 아가베의 과육이 느껴졌다고 해야 될까? 테킬라는 아가베로 만들고, 아가베 100퍼센트인 테킬라가 당연히 좋고, 블루 아가베가 다른 아가베보다 더 좋다. 아가베를 실제로 본 적은 없으나 알로에와 비슷한 무엇으로 연상해 보았다. 투명한 젤이 가득하지만 끈끈하지는 않고 산뜻하기만 했던 알로에의 점성을 떠올리면서.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테킬라 블랑코의 맛을 알게 된 게. 블랑코(blanco)는 실버라고도 하는데 거의 숙성하지 않은 테킬라다. 다음 단계가 레포사도(reposado)로 ‘휴식을 취한’이란 의미. 그다음 단계가 아녜호(añejo)로 1년 이상 숙성한 테킬라다. 집에 레포사도와 아녜호가 있는데 술 자체를 맛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의외였다. 나는 숙성하지 않은 테킬라파인가? 아니면 내가 마신 돈 훌리오의 블랑코가 맛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부의 물을 마시기 위해 한번 더 갔다. 시한부 가게이므로 곧 그 술도 없다는 생각에. 술을 타시는 분께 비법을 물어봤는데 그야말로 비법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알려줄 수 있는 건 직접 만든 파인애플청과 돈 훌리오 블랑코와 얼음이 들어간다는 것. 요즘의 나는 언젠가 담근 영귤청을 돈 훌리오 블랑코에 타서 마시고 있다. 물론 라임즙도 잔뜩. 세 번의 시도 끝에 제법 마음에 드는 모사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어부의 물은 내게로 와서 4월의 물이 되었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