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42)은 우리 시대에 가장 많이 읽히는 시인이다.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2012년)는 64쇄를 찍었고 20만부 이상 판매됐다. “내 돈 주고 처음 산 시집이 박준 시인의 것”이라는 독자가 적지 않다. 신동엽문학상, 박재삼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받으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아무튼, 주말’에 격주로 ‘박준의 마음 쓰기’라는 에세이를 연재 중인 시인이 7년 만에 신작 시집을 펴냈다. 제목은 ‘마중도 배웅도 없이’다. 마중에는 기다림을 일찍 끝내려는 기대가, 배웅에는 기다림을 늦추려는 아쉬움이 담겨 있다. 만남을 앞당기거나 작별을 미루는 일은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 ‘일요일 일요일 밤에’도 그렇다. 짧아서 전문을 옮긴다. “일신병원 장례식장에 정차합니까 하고 물으며 버스에 탄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가 운전석으로 가서는 서울로 나가는 막차가 언제 있습니까 묻는다 자리로 돌아와 한참 창밖을 보다가 다시 운전석으로 가서 내일 첫차는 언제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사람의 심경이 담겨 있다. 일요일 밤, 버스에 탈 때 그는 빈소를 지키다 막차로 나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중에 밤을 새우고 이튿날 첫차를 타기로 마음을 돌려세운다. 월요일 새벽을 기꺼이 내어주기로. 배웅을 늦출 만큼 고인과 각별한 사이였을 것이다. 이 시집에는 평생 덤프트럭을 몰았고 시인에게 감수성을 물려줬다는 아버지의 장례식도 등장한다.
“몇 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 ‘네가 언제 아버지 뜻을 다 따르고 살았니?’라는 상미 고모 말에 용기를 얻어 지난봄 있었던 아버지의 장례 때 나는 모두에게 부고를 알렸다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었다.”(시 ‘블랙리스트’)
금기형, 박상대, 박상미, 신천식, 샘말 아저씨, 이상봉, 이희창, 양상근, 전경선, 제니네 엄마, 제니네 아빠.... 그 시에 적힌 명단은 시인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목 놓아 운 사람들이다. 생전에 가까웠지만 아마도 형편은 고만고만했을 사람들이 자신의 영정 앞에서 슬퍼할 것을 알았기에,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라”고 아버지는 당부한 것이다. 블랙리스트가 이렇게 따스하고 다정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