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여성 이모(35)씨는 퇴근과 동시에 근처 직장 어린이집으로 달려간다. 다섯 살 아들을 데려가기 위해서다. 남편도 같은 직장에 다니지만 아이 등·하원은 이씨 몫이다. 이씨는 출산과 육아 휴직으로 동기인 남편보다 승진도 늦은 상태. “출산으로 인해 포기한 게 더 많은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우리나라는 작년(잠정치) 35세 이상에 아이를 낳는 고령 산모가 전체 산모 셋 중 한 명(33.8%)이었다. 1990년 2.5%에서 30년 만에 13배 이상 뛰었다. ‘늦맘(늦둥이 엄마)’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경제적 부담·경력 단절이 원인
본지가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를 통해 전국의 25~45세 여성 1013명에게 출산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응답자의 70% 이상이 출산을 하는 건 긍정적이었지만, 현실적 여건을 고려했을 때 실제 출산을 하겠다는 비율은 떨어졌다. ‘출산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14.4%였고, ‘여건이 되면 하는 것이 좋다’는 58.8%에 달했다. 그러나 실제 계획을 물었을 때는 미혼자의 42.5%는 ‘향후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답했다. 기혼자도 57.5%가 ‘자녀를 더 낳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출산 시기가 점점 늦어지는 이유로 여성들이 가장 많이 꼽은 건(2개 복수 응답) ‘경제적으로 부담이 돼서’(44%)와 ‘경력 단절 또는 직장 내 불이익이 걱정돼서’(34.4%)였다. ‘아이를 꼭 낳지 않고 살아도 된다는 가치관 때문’(27.9%), ‘여성 혼자 감당하는 부담이 커서’(27%)란 응답이 다음이었다. 자녀 한 명을 낳아 대학 졸업을 시킬 때까지 소요되는 비용이 4억원에 이른다는 조사가 나왔을 정도로 자녀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큰 데다, 임신과 출산, 양육으로 인한 직장 생활 공백과 ‘눈치 주기' ‘주요 업무 배제' 같은 불이익도 여전하다. ‘출산을 미루려는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경력 단절이나 출산 불이익 없는 직장 문화’(29.4%)가 1순위로 꼽힌 이유다<그래픽 참조>.
◇미혼자 중 28%만 ‘결혼 계획’
결혼·출산에 대한 가치관도 변하고 있다. ‘결혼하면 자녀가 반드시 있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거의 절반(47%)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미혼 응답자는 36.5%가 ‘결혼하지 않을 것(비혼)’을 택했고 ‘모르겠다’가 35.1%였다.
낮아진 결혼과 출산에 대한 선호도는 저출산 심화로 이어진다 . OECD는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평균 출생아 수)이 1.3명 이하면 ‘초저출산'으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작년 합계 출산율이 0.84명(잠정치)에 그쳤다. 정부는 돌봄 서비스 강화, 양육비 지원 같은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저출산 심화 추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눈에 보이는 지원보다 가치관 변화 등을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28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세대효과와 출생성비가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이 자라면서 경험한 ‘남성 중심적인 문화’도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남아 선호 영향으로 출생성비(출생여아 100명 대비 출생남아 수)가 125명인 지역에서 태어난 여성은 아이를 가질 확률이 출생성비 105명인 지역과 비교해 7.9%포인트 낮았다.
김경수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졌는데 가정 내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에 변화가 없다면 여성의 혼인 기피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며 “남성 중심적 가족관에서 벗어난 새로운 가족 개념이 정착하도록 다각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