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읍내에 있는 진도전남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김현태 전문의가 어린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지난 1일 문을 연 이곳은 진도의 첫 소아청소년과다. 이전까지는 진도에서 아이가 아프면 차로 1시간 거리인 목포까지 가야 했다. /김영근 기자

7일 오후 2시 전남 진도군 읍내에 있는 진도전남병원. 노인 환자 10여 명이 앉아있던 병원 로비에 초등학생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진료받으러 온 어린이 환자였다. 대부분 감기 몸살 증상이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진도에서는 아이가 아프면 차로 1시간 거리인 목포까지 가야 했다. 지금까지 진도에는 소아청소년과(소청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도군은 전국 시·군·구에서 소청과가 없는 58곳 중 한 곳이다. 부모들은 아픈 아이를 데리고 목포 병원에 가기 위해 연차를 내야 했다.

지난 1일 진도 역사상 처음으로 소청과가 생기면서 학부모들은 한시름 놓게 됐다. 내과·외과·정형외과·영상의학과·가정의학과만 있던 이 병원이 소청과 진료를 시작한 것이다. 진도군청 관계자는 “예전에 진도에서 근무하던 공중보건의가 관련 진료를 한 적이 있지만, 소청과 간판을 달고 전문의가 진료과를 개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진료 첫날 오전 어린이 환자 9명이 왔다. 대구에서 진도 리조트로 놀러 왔다가 얼굴에 두드러기가 났다며 치료받은 초등학생도 있었다. 이튿날에는 33명, 사흘째에는 50명이 몰렸다. 마스크 착용 의무가 풀리면서 호흡기 감염병이 기승을 부리자 병원을 찾은 어린이 환자가 부쩍 늘어난 것이다. 워킹맘 허수희(43)씨는 “병원이 가까이 있어 이제 아이가 아파도 마음을 크게 졸이지 않아도 되겠다”며 “다른 엄마들도 다들 비슷한 심정일 것”이라고 했다.

새로 문을 연 소청과를 맡은 전문의는 31년 경력의 김현태(60)씨다. 김씨는 소아청소년 일반 진료와 치료 및 처방, 영·유아 건강검진을 담당하고 있다.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오후 8시까지 야간 진료를 한다. 토요일은 격주로 환자를 본다. 그는 “거창한 소신이 있어서 온 게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돈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로 문 닫는 소청과가 줄을 잇는 요즘 의료계 분위기에서 김씨의 진도행(行)은 예사롭지 않다.

김씨는 전남대 의대를 졸업했다. 당시만 해도 소아과는 인기 있는 과(科)였다. 2000년부터 8년간 광주광역시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다가 이후 전남 순천과 광양, 경남 통영 등 종합병원에서 근무했다. 그는 “좀 더 큰 병원에서 많은 소아 환자를 만나 치료하고 싶었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는 평생 소아 환자만 진료해 온 그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팬데믹으로 운영이 힘들어진 병원은 의료 수가가 낮고 비급여 진료가 드물어 매출이 제일 적은 소청과 의사들부터 나가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동료들이 대부분 요양 병원으로 빠졌지만, 그는 소청과를 고집했다.

2020년 12월 경남 거제의 한 종합병원 소청과에서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김씨는 “내가 필요한 곳이면 거기가 어디든 즐겁게 진료하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 3월에는 진도전남병원의 제안을 받았다. 진도는 그가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던 목포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정이 갔다. 병원장이 의대 동기라 마음도 놓였다. 그는 “무엇보다 나를 찾는 곳이 있다는 게 기분 좋았다”고 했다.

진도에 첫 소청과가 들어서는 과정에 진도군도 힘을 보탰다. 조례까지 뜯어고치며 소청과 전문의 모시기에 나섰다. 소청과 개설은 군민들의 오랜 염원이었다. 하지만 2만9700여 명인 진도 인구 가운데 소아·청소년(0~18세)은 3380명에 불과했다. 진도전남병원은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의료 취약지 지원사업에 선정돼 국비와 도비 등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소청과 개설에 필요한 전문의 1명과 간호 인력 5명(간호사 2·간호조무사 3)의 인건비를 댈 돈이 부족했다. 진도군은 지난해 12월 군비로 의료 기관에 지원금 23%를 추가로 줄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진도전남병원은 오는 7월부터 5명이 입원할 수 있는 소청과 전문 입원 병동도 운영할 계획이다.

박윤숙(55) 진도군보건소 의약관리팀장은 “군민들에게 김 선생님은 구세주 같은 존재”라며 웃었다. 김씨는 “내 손주처럼 진도 아이들을 치료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