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을 개발해 코로나 팬데믹 극복에 기여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신종 전염병인 코로나 대유행에서 인류를 구한 의과학자에 대한 헌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는 2023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커털린 커리코(68) 독일 바이오엔테크 수석 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64)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를 선정했다고 2일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은 mRNA가 어떻게 면역 체계와 상호 작용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꾼 획기적인 발견을 통해 현대 인류 건강에 가장 큰 위협 중 하나인 시기에 전례 없는 속도로 백신을 개발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30여 년 전 이들이 처음 제시한 mRNA 기술이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이어져 통상 10년 걸리던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불과 3개월 만에 가능하게 만든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에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임상 시험으로 효과가 검증됐지만, 심사 당시 mRNA 백신 접종이 막 이뤄지는 단계라 수상을 시기상조로 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mRNA 백신이 코로나 종식을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커리코 부사장은 헝가리 출신 생화학자로, ‘백신의 어머니’라 불린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여성은 그를 포함해 13명으로 늘었다. 20대에 mRNA 연구를 위해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간 커리코 부사장은 여성 과학자로서 인간 승리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딸의 인형에 숨겨 간 900파운드(약 150만원)가 미국으로 건너갈 당시 전 재산이었다. 연구 초창기인 1990년대 초에는 성과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추방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가 교수로 있던 펜실베이니아대학이 연구를 포기하거나 연봉 삭감을 받아들이라는 선택을 강요했지만, 커리코 부사장은 굴하지 않았다. 연봉을 절반만 받기로 하고, 지원금 없이 mRNA 기술 개발에 40여 년을 매진했다.
커리코 부사장은 그 사이 암 진단을 받고 두 차례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때 대학에서 쫓겨날 뻔했던 시련이 mRNA 연구에 더 몰입하게 된 힘이 됐다. 기초 실험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기에 성공하리라 믿었다”며 “과학자는 시련의 상처를 스스로 아물게 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와이스먼 교수는 보스턴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 국립보건원에서 mRNA 연구를 했다. 1997년 펜실베이니아대학으로 와서 20년 넘게 커리코 교수와 함께 RNA 혁신 연구소를 이끌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자 많은 글로벌 제약사가 백신 제조에 뛰어들었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커리코 연구팀이 가진 특허 기술과 그가 속한 독일 바이오 회사 바이오엔테크와 협력해 코로나19 mRNA 백신을 만들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수십억 명이 맞은 코로나19 mRNA 백신은 그동안 백신 개발에 활용한 제조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만드는 혁신적인 백신이다. 통상 백신은 바이러스 독성을 약하게 해 사람 몸에 넣어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해당 바이러스로 인한 질환이 발병하지 않는 수준에서 면역반응이 일어나게 한다. 이 상태에서 실제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면역 체계가 작동해 감염을 막는다. 홍역이나 풍진, 수두 등의 백신이 이런 방식이다. 이들 백신 개발에는 통상 10년이 걸렸다.
하지만 코로나19 mRNA 백신은 약화된 바이러스를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독성을 내는 타깃(스파이크 단백질)과 똑같은 형태의 단백질을 몸속에서 스스로 만들도록 유전자 명령(mRNA)을 투입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인간 세포가 외부 유전자 명령을 받아 스스로 표적을 만들어 낸다. 바이러스 없이 바이러스 대항 백신을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실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맞닥뜨린 것처럼 우리 몸에서 면역반응이 일어난다. 코로나19와 맞서 싸울 ‘무기(항체)’를 만들고, ‘군대(T면역세포)’를 양성한다. 가짜 적군을 스스로 만들어 싸우는 가상훈련과 대비 체계를 갖춘 것과 같다. 실제 적군이 왔을 때 그 무기와 군대를 내세우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원리다. 이 방식으로 새로운 백신을 만드는 데 3개월 정도 걸렸다. 이제 어떤 신종 바이러스가 등장해도 인류는 바이러스 유전자 분석으로 내부 항원 제조 방식의 mRNA 백신을 빨리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mRNA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의 물질로, 의도치 않게 강한 선천 면역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임상적 응용에 제약이 있었다. 커리코·와이스먼 연구팀은 변형된 조작 기법으로 mRNA를 합성해 선천 면역반응을 회피하고, 안정성을 높이는 기술을 처음으로 고안해 냈다. 이후 mRNA 기술을 통한 백신과 다양한 치료법이 시작될 수 있었다.
커리코 부사장과 와이스먼 교수는 상금 1100만크로나(약 13억6400만원)를 받는다. 노벨위원회는 2일 생리의학상을 필두로, 3일 물리학상, 4일 화학상, 5일 문학상, 6일 평화상, 9일 경제학상 등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mRNA(메신저 리보핵산)
DNA(유전자)의 유전 정보를 복사해 세포 안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인 리보솜에 전달하는 물질. 신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에 해당한다. mRNA의 정보 전달 원리를 응용하면 바이러스를 막는 항체 등 원하는 단백질을 우리 몸에서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