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21일 “다음 달 1일부터 응급 및 중증 환자의 안정적인 진료를 위해 외래 진료를 최소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의교협에 속한 39곳의 의대 교수들은 모두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을 포함해 국내 대표적인 대형 병원(상급 종합병원) 47곳에서 진료와 수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오는 25일부터 외래 진료를 줄이겠다고 했다. 다음 달 1일부터는 외래 진료를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전의교협은 이 ‘최소화’가 어느 수준인지는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전의교협 관계자는 “다음 달 초엔 대형 병원의 외래 진료가 최소 30% 줄어들 것”이라며 “앞으로 1~2개월 후엔 외래 진료가 전면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전의교협은 외래 진료 축소 이유를 ‘교수들의 번아웃(극도의 피로)’이라고 말하고 있다. 교수들이 전공의 없이 수술과 당직, 외래 진료까지 다 하는 생활을 한 달 넘게 하다 보니 응급 환자마저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녹초가 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 내에선 이를 의대 교수들의 ‘태업(怠業) 시도’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교수들이 외래 진료 축소 시작 시점으로 밝힌 25일은 이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사표를 내기로 한 날”이라며 “항의 성격이 짙은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전공의 파업이 벌어진 이후 의사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정부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수준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하니, 우리도 OECD 수준으로 진료 환자 수를 줄이겠다’는 글들이 자주 올라왔다. 한국 의사 한 명당 진료 환자 수는 OECD 평균의 3배 정도다. 결국 교수들이 ‘의대 2000명 증원’을 막기 위해 진료 환자 수를 대폭 축소하는 식으로 정부를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 내에선 “대형 병원 교수들이 외래 진료와 함께 중증 환자의 수술·입원마저 줄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만일 교수들의 고의적 태업이 드러나면 이를 불법 ‘진료 거부’로 보고 제재할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30~40대 젊은 교수들 중엔 사표가 수리되지 않아도 병원을 떠나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정부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환자를 떠나는 교수들에겐 원칙 대응하겠다”고 했다. 대형 병원 교수들의 이탈이 가속화할 조짐이 보이면 전공의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진료 유지 및 복귀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대형 병원의 진료 파행 장기화에도 대비하고 있다. 2차 의료기관(종합병원급)을 거친 경우에만 3차 의료기관인 대형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해 경증 환자를 막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중환자는 대형 병원에서 질환별로 전국 109개 전문병원으로 이송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의교협 소속 교수들은 “정부 정책을 반대해서 진료 축소를 하는 게 결코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 교수들의 피로가 극심해 수술도 제대로 못할 정도라는 것이다. 전의교협 관계자는 “최근 서울 소재 대형 병원의 안과 교수가 쌓인 피로에 집중력을 잠시 잃어 왼쪽 눈을 수술해야 하는데, 오른쪽 눈에 메스를 댈 뻔한 일도 있었다”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중환자들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정부 내에서도 이번 진료 축소 발표를 태업보다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큰 병원 교수들이 요즘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이명, 우울증 등에 시달린다고 들었다”며 “교수들이 외래 진료와 중환자 진료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 시기일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조만간 정부와 교수 단체들이 비공개로 만나 협의를 할 예정”이라며 “교수들이 대거 근무지를 이탈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