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주말인 지난 18일 비공개로 만나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내년 의대 정원 조정을 위한 최고위급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정부 일각에선 “전공의·의대생을 복귀시키기 위해 2026학년도 정원 감원 수순을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의료계 등에 따르면, 18일 만남은 이 부총리가 제안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선 “의대 증원이든 감원이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서 서로 욕먹을 각오 하고 담판을 짓자”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정해야 하는 2월 말까지 서로 협의해 통 큰 결단을 하자”는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총리는 대통령 탄핵 소추 후 의대 증원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근 내부 회의에서 ‘저는 의료 사안을 모르니, 이 문제를 이 부총리에게 일임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이후 이 부총리는 의정 갈등의 원인인 의대 증원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 부총리는 최근 정부 회의에서 “서울대 의대생들 대다수도 이번 학기 복귀를 할 것 같다”며 “정부가 선제적으로 의대 정원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서 복귀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와 대통령실에선 “정부가 백기를 든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주로 나왔다.
이달 초 이런 부처 간 이견을 갈등 수준으로 격화시킨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교육부의 대통령 권한대행 업무 보고였다. 교육부의 업무 보고서에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2025학년도 증원분(1497명)을 제로화하는 전향적인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라는 문구가 국무조정실 사전 검토 회의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사실상 현 정부 의대 증원 정책의 백지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이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복지부와 대통령실이 강하게 반대해 최종 보고서에선 이 내용이 빠졌지만, 업무 보고 당일 이 부총리가 ‘제로베이스’라는 말을 언론 발표문에는 넣어야 한다고 해서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했다. 최 권한대행은 이 부총리에게 이 문제를 계속 맡겼다. 지난 10일 최 권한대행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사과하며 “2026학년도 정원은 제로베이스에서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같은 날 이 부총리도 사과를 했고,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닷새 뒤 국회에 나가 ‘2026학년도 의대 입시에선 증원 전 인원인 3113명이나, 여기서 더 감원한 숫자를 뽑을 수도 있느냐’란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 부총리의 생각대로 정부가 의료계를 향해 일제히 유화적 제스처를 보인 셈이다. 여기에 이 부총리는 신임 의협 회장을 만나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담판까지 논의한 것이다.
정부 내 균열도 점차 선명해지는 모양새다. 의정 갈등 주무 부처인 복지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년간 의정 갈등 실무를 총괄해온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최근 주변에 “의대 증원을 되돌릴 거면 지난 1년간 왜 그렇게 환자들을 힘들게 했나” “핵심 정책을 바꾸려면 사람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의 거취도 걸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는 합격자가 발표된 최근까지도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취소를 요구해왔다”며 “저자세 대응으론 전공의도, 의대생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20일 발표된 사직 전공의 복귀율도 2.2%로 미미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도 복지부와 비슷한 입장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의대 증원을 백지화하자는 게 아니라 정부와 의료계의 최고 책임자들이 조건 없이 만나서 담판을 지어보자는 뜻”이라며 “올해 대형 병원 진료와 의대 수업의 파행을 막을 대안이 이 외에 더 있나’라고 했다. 의협 관계자는 “최소 올해 의대 증원분만큼은 감원을 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