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2일 오전 대만 타이베이시 한 맨션. 국립대만대학병원 베이후분원 소속 의사 치아밍 리 교수가 인도네시아인 간병인 아나(37)씨에게 대만어로 “컨디션은 어땠나요?”라고 물었다. 이 집에선 파킨슨병과 당뇨를 앓고 있는 진모(92)씨가 살고 있다. 리 교수와 간호사는 아나씨의 도움을 받아 누워 있는 진씨를 뒤집거나, 옆으로 뉘어 몸 상태를 살폈다. 혈압을 재고 엉덩이 부위의 욕창도 살폈다. 리 교수는 “소변 색이 보랏빛이라 검사를 더 해야겠다”며 휴대용 초음파 기기로 신장 등을 추가 검사했다. 이들은 약 40분간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 환부 치료 등 진료를 보고 보호자에게 처방전을 발급했다.
진씨의 며느리는 이날 진료비(본인 부담금 5%)와 의료진 택시비로 750대만달러(약 3만원)를 지불했다. 평소엔 아나씨가 진씨 간병을 도맡는다. 5년 전 대만에 온 아나씨는 24시간 진씨 옆에 상주하며 약과 식사를 챙기고, 대소변 처리와 청소도 도맡고 있다. 한 달에 약 2만 대만달러(약 85만원)를 받는다.
올해 초고령사회(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에 진입할 예정인 대만 역시 ‘노인 돌봄’이 큰 사회적 과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 상당수가 요양병원이나 시설에 보내지는 한국과 달리 대만의 노인 대부분은 자신이나 자녀의 집에 머무르며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다. 대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노인 10% 정도만 요양 시설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33년간 외국인 간병인 늘려… 재택의료땐 본인부담 5%
타이난 성공대학병원에선 소아과·신경외과·흉부외과 등 다양한 전문의 40여 명이 리 교수처럼 재택의료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평소에는 병원에서 외래 환자를 돌보다, 일주일에 1~2일씩 택시를 타고 환자 집에 방문해 진료를 본다. 이 덕에 노인이나, 이동이 어려운 환자들은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달에 한 번씩 집에서 의사를 만난다. 병원에서도 재택의료에 참여하는 간호사는 야간 근무를 빼주는 등의 지원을 해준다. 각 집마다 환자의 상태를 알고 있는 외국인 간병인이 있다 보니 재택의료가 더 수월하다. 뤄위다이 가정의학과 교수는 “방문 진료를 가면 짐 챙기는 것부터 모든 것을 의사가 다 해야 하고, 24시간 보호자와 연락해야 해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라며 “그럼에도 병원에서 인센티브를 늘려 의사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고 했다.
대만에선 정부와 병원이 함께 나서 재가(在家) 돌봄이 ‘돌봄의 표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정부는 20만명이 넘는 외국인 간병인을 일찍이 도입했고, 의료와 장기요양보험 제도 역시 ‘재가 돌봄 서비스’에 초점을 맞춰 지원을 늘리고 있다. 병원에서도 재가 노인을 위한 재택의료 서비스, 퇴원한 노인을 위한 돌봄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대만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사회복지 분야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 수는 21만4514명이다. 최근에서야 관련 논의를 시작한 한국과 달리 대만은 1992년 일찍이 간병인을 해외에서 데려오기 위한 제도를 신설했고 체계화해왔다. 지난해 11월 12~13일 대만 타이베이와 가오슝에서 재택 의료진과 환자 집 6곳을 방문했는데, 모두 인도네시아·필리핀 출신 간병인을 고용하고 있었다. 이 환자들은 영양사가 짜준 식단을 먹는 등 맞춤형 서비스를 받고 있다. 의료정책에선 ‘재택 의료(Hospital at home)’ 정책을 도입해 입원이나 통원치료 대신 집에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정부 지원으로 환자 부담금은 총 진료비의 5% 수준으로 줄어든다.
병원도 치료뿐 아니라 치료 후 돌봄이나 재활 분야 서비스를 노인들에게 연계해주며 ‘통합돌봄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밍유에저우 고령의학과 교수는 “퇴원 전 2~3일 안에 병원 측에서 요양 등급을 결정하는 위원회와 접촉해 빠르게 요양 등급을 받고, 재가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급할 경우 패스트트랙으로 하루 만에도 되기 때문에 퇴원과 이후 서비스 사이 공백이 없다”고 했다. 가오슝 국립보훈병원은 2016년 ‘장기요양 서비스’ 센터를 열었고, 타이베이 국립보훈병원은 2023년 병원 내에 주간보호센터를 열었다. 집에서 이 센터를 오가며 재활·물리 치료 등을 받던 노인들은 위급 상황이 생기면 곧바로 병원으로 가면 된다.
이런 제도 뒷받침 덕분에 노인을 부양하는 가족들은 ‘일·돌봄 양립’이 가능해졌다. 재가돌봄 서비스를 받는 동모(89)씨의 사위는 “요양 시설에 부모님을 보내려는 지인도 있지만, 요양시설 서비스의 질이 천차만별이라 걱정스러웠다”고 했다. 노인 입장에서도 요양시설이라는 낯선 곳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던 집에 머무르며 국가가 제공하는 방문 진료, 주간보호센터 방문, 방문 목욕 서비스 같은 ‘재가 돌봄 서비스’를 받아 만족도가 더 높다.
병원이나 정부 입장에서도 좋은 점이 많다. 더 많은 인력과 관리가 필요한 ‘시설 돌봄’ 대신 ‘재가 돌봄’을 유도해 재원을 아끼고, 병원은 중증 환자 위주로 받을 수 있게 됐다. 가오슝 보훈병원 관계자는 “노인들의 퇴원이 빨라지고, 병원에선 중증 환자 위주로 치료를 할 수 있게 되는 간접 효과도 있다”고 했다.
☞재가(在家) 돌봄
노인이 요양원과 같은 시설이 아닌 살던 집에 머무르며 돌봄 서비스를 받는 것. 가족이 노인을 부양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만에서는 20만명이 넘는 간병인이 노인의 집에 24시간 상주하며 식사 준비, 청소, 대소변 처리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