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주요 기업 경영자들이 국가적 사안인 저출생 문제 해결에 발벗고 나섰다. 회사 정책에 결정적인 권한을 가진 경영자들이 일·가정 양립 정책 도입에 의기투합하자, 재계에서는 기업 간 ‘저출생 대응 경쟁’이 벌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윤상현 콜마그룹 부회장, 성래은 영원무역그룹 부회장, 송병준 컴투스 의장 등 기업인들은 최근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 문제 인식 개선을 위한 릴레이 캠페인’에 참여했다. 이들이 경영하는 회사는 릴레이 캠페인 참여를 계기로 다양한 저출생 해법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루게릭병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지난 2014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아이스버킷 챌린지처럼, 이번 캠페인이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 운동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이 캠페인의 첫 주자는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다. 저출생·고령화 문제 등을 담당하는 이 차관은 지난 10월 이 캠페인을 한국보건복지인재원과 함께 시작했다. 참여 기관의 기관장 등이 ‘아이는 행복하고, 청년은 희망을 키우며, 노인은 보람 있는 대한민국이 되도록’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기관 소셜 미디어나 보도 자료 등을 통해 참여를 인증하면 된다. 인증 후에는 다음 참여 기관 1~2곳을 지목하는 방식이다. 한국보건복지인재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캠페인에 120여 기관이 참여했다. 지자체나 공공기관 등이 대부분인데, 특히 지난해 말부터 기업 참여도 잇따르고 있다.
윤상현 콜마 부회장은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의 지목을 받고 지난해 12월 캠페인에 동참했다. 그는 지난해 3월 사내에 ‘콜마 출산장려팀’을 신설했다. 윤 부회장의 구상으로 만들어진 출산장려팀은 직원들에 대한 출산 장려 정책을 보완하고 개발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남녀 직원 모두 출산 휴가가 끝나면 육아 휴직을 1개월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근로자 입장에서 출산 휴가를 마치고 곧바로 직장에 복귀하는 부담을 덜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2009년부터 지급해 온 출산 장려금도 기존 첫째 100만원, 둘째 200만원, 셋째 이상 1000만원에서 첫째·둘째 1000만원, 셋째 2000만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윤 부회장은 다음 주자로 성래은 영원무역 부회장을 지목했다. 콜마그룹 관계자는 “윤상현 부회장과 성래은 부회장은 미국 스탠퍼드대 동문으로 친분이 있고, 평소 저출생 등 인구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던 차에 좋은 취지의 캠페인이 있어 지목하게 됐다”며 “특히 (두 부회장의 아버지인) 윤동한 콜마그룹 회장과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모두 경남 창녕군 출신이어서 평소 다양한 소통을 이어 왔다”고 밝혔다. 이들은 회사 경영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인구 문제도 자연스럽게 화두로 삼는다고 한다. 성 부회장은 “경영자들은 지금의 인구 절벽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인구 문제는 조직원 모두의 삶과 직결되는 부분”이라며 “기업이 가족 친화 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단순한 복지를 넘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영원무역은 여성 임직원 비율이 70%, 여성 임원 비율이 50%에 이른다. 영원무역은 캠페인 참여와 동시에 지난달부터 성 부회장 주도로 만 6세 이하 자녀를 키우는 직원에게 월 20만원의 육아 수당을 주는 제도를 신설했다. 또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둔 학부모 직원들은 시차출근제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부터는 임신한 직원들에게 연간 교통비 1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성 부회장의 지목을 받은 송병준 컴투스 의장도 지난 7일 캠페인에 참여했다. 송 의장과 성 부회장은 국립중앙박물관·국립발레단 후원 모임에서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성 부회장은 “송 의장님은 자수성가한 벤처 창업계 주역으로, 2세 경영인인 저에게 훌륭한 멘토가 되어 주신다”고 했다.
컴투스는 임신한 직원들이 월급 삭감 없이 하루 2시간 단축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의 법정 임신기 근로 시간 단축 제도는 임신 12주 이전이나 36주 이후에만 사용할 수 있는데 이 회사에서는 임신 주수와 상관없도록 제도를 확대했다. 컴투스 관계자는 “이번 캠페인 동참을 계기로 임직원들과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더욱 고민하고, 인식 개선을 위해 함께 노력할 예정”이라고 했다. 송병준 컴투스 의장은 다음 참여자로 허윤홍 GS건설 대표를 지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