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각 대학이 ‘100% 자율’로 결정하도록 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각 대학 결정에 따라 내년도 의대 증원 규모는 최소 0명, 최대 2000명이 될 수 있다. 정부는 19일 이 같은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19일 법안 심사 소위를 열어 보건의료기본법, 보건의료인력지원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법안엔 정부가 향후 의대 정원을 정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할 전문가 기구인 ‘의료 인력 수급 추계위(추계위)’ 신설 내용이 들어가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보건복지부는 이날 추계위 관련 법안 심사 때 ‘2026학년도 의대 정원 특례 조항’을 법안 부칙에 넣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힐 예정이다. 부칙의 내용은 ‘각 의대의 총정원(5058명)은 그대로 유지하되, 그 안의 증원 규모(최대 2000명)는 각 대학이 자율로 정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론 ‘복지부 장관이 추계위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심의를 거쳐 2026학년도 의사 인력 양성 규모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대학의 장은 대학별 교육 여건을 고려해 2026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 중 의대 모집 인원을 2025년 4월 30일까지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이 경우 대학의 장은 교육부 장관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정부 관계자는 “입시 일정상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내년도에 한해 ‘대학 자율 증원’을 실시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 대안이라는 취지”라고 했다.
◇‘의대 증원’ 작년엔 대학에 50%, 올해는 100% 자율권
국회가 19일 의료 인력 수급 추계위 신설안을 논의할 예정인 가운데 의료계에서도 내년도 의대 정원을 추계위를 통해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아직 추계위 위원 구성을 어떻게 할지, 여기에 실질적인 의결권을 줄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당장 추계위가 꾸려진다 해도 향후 의사 수가 얼마나 더 필요한지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얻으려면 최소 3~4개월은 걸릴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런데 정부는 입시 일정상 올 3월까지 내년도 의대 정원을 확정해 각 대학에 배정해야 한다. 추계 결과를 이때까지 내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추계위와 보정심을 통한 의대 정원 조정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면 원칙적으로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지난해 2000명이 늘어난 5058명이 된다. 이대로 입학 절차가 진행되면 의정 갈등이 1년 더 이어질 수 있고 의대 교육 정상화도 어려워지는 등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만큼 대학 자율적으로 정원을 줄일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둔 것이다.
만약 복지부 입장대로 내년도 의대 증원이 ‘100% 대학 자율’로 결정되면 관련 절차가 줄어들어 대학 입장에선 준비할 시간을 벌게 된다. 전국 각 의대는 이미 증원분을 포함한 의대 정원 5058명을 배정받았다. 정부가 3월 안에 2026학년도 정원을 새로 정해서, 이 정원을 전국 40개 의대에 배정하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각 대학은 배정받은 정원 중 증원분 2000명에 대해서만 얼마를 늘릴지 결정한 뒤 4월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2026학년도 대입 시행 계획 변경 사항을 제출하면 된다. 학부모와 수험생은 이때쯤 의대별 내년도 모집 정원의 윤곽을 알 수 있다.
정부의 ‘의대 100% 자율 증원’ 방침에 대해 의료계는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의료계에선 여전히 ‘증원 0명’ ‘감원’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의협은 작년 말 수능이 끝나고 수시 합격자가 발표됐을 때도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중단’을 주장했었다. 증원분(2000명)은 뽑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의협 강경파 간부들은 “2026학년도엔 아예 의대생을 한 명도 안 뽑는 식으로 감원을 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대학 자율이란 명목으로 의대 증원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라며 “각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유치할 수 있는 의대 증원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이라고 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에도 2000명 증원을 확정한 후 일부 국립대의 건의를 수용해 2025학년도 모집 인원에 한해 늘어난 정원의 50%까지 줄일 수 있도록 허용한 바 있다. 올해는 아예 100% 자율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의료계에선 이 과정에서 대학 본부와 소속 의대 간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입장 차가 크기 때문이다. 각 대학 의대 교수들은 “현재 의대는 증원된 학생들을 가르칠 시설, 인력을 갖추지 못해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반면 각 대학 총장 등 집행부 입장에선 의대 학생 수를 줄이기 어렵다. 교육계 인사들은 “현시점에서 의대는 신입생을 끌어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라며 “의대 정원 규모는 학교 위상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또 각 대학은 이미 정부의 예산을 받아 늘어난 의대생을 가르칠 교수를 추가로 뽑고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증원 없는 과거’로 돌아가는 건 힘들다는 것이다. 영남 지역 한 대학의 입학처장은 “지방대에선 특히 의대 학생 수를 줄이기 어렵다”며 “대학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막판에 작년보다 더 모집 정원을 늘릴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에 반발한 의대 교수들이 집단 휴진 등의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만일 주요 병원의 의사 10% 이상이 전공의들처럼 동시에 이탈을 하게 되면 수술·입원이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정부와 의료계 모두 이렇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여전히 대부분의 교수는 환자를 지키려 한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의대 증원 무효화를 요구하며 ‘연대 투쟁’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전문의 배출 중단 사태가 장기간 이어져, 중환자가 제때 치료를 못 받는 의료 공백이 점점 심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