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국·프랑스 등은 중과실 치사가 아닌 경우 의료 사고에 대한 형사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최선을 다한 의료진에 대해서는 사법적으로 보호하는 한편, 환자의 권리를 신속하게 구제할 다른 장치들도 마련돼 있다.
일본은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의료기관에 유가족에 대한 설명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또 유족이 요청할 경우 의사회 등 전문 기관 주관으로 조사를 실시한다. 명백한 의료 과실일 때에만 기소해 형사 처벌이 적용된다.
프랑스는 국가 차원에서 의료 사고에 대한 보상 체계를 운영 중이다. 의료 사고 국가보상기관(ONIAM)에 의료 사고 신고가 접수되면, 조사관들이 의료 사고 여부를 따진다. 의료인의 과실이 없거나 불분명한 경우 국가에서 보상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국가로부터 보상받기 때문에 의료인의 형사 책임을 끝까지 추궁할 요인이 적어지는 것이다. 과실 수준에 따라 형사 책임도 다르다. 단순 과실의 경우 의사가 직접 초래한 것으로 인정됐을 때에만 형사적 책임이 제한적으로 부과된다. 반면 중과실의 경우 인과관계만 인정되더라도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
영국은 의료진의 설명 의무를 특히 강조한다. 의료 사고 초기 불필요한 오해로 인해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막는다는 취지다.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중심으로 국영 의료 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영국은 NHS 소속 병원에서 발생한 의료 사고에 대한 보상 책임을 국가가 진다. 특히 사안이 비교적 경미해 보상청구액이 2만5000파운드(약 4500만원) 이하인 경우 하루 이내의 재판을 거쳐 보상액을 지급하는 ‘패스트 트랙’ 제도도 운영한다. 환자와 NHS 모두 의료 사고로 인한 시간과 법적 비용을 줄이자는 의도다.
오스트리아는 의료진이 의료 행위에 대한 환자의 동의를 구했는지를 중시한다. 의학적 원칙에 따른 경우라도 환자 동의 없이 진료한 경우 처벌하는 것이다. 응급 상황 등 환자의 동의를 구할 수 없는 경우에는 면책된다. 의료 사고도 의사에게 중대한 잘못이 없고, 의료 행위로 인해 환자가 일을 할 수 없는 기간이 2주 이내인 경우에는 형사 책임이 면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