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우리나라에서 대유행한 백일해 유발 세균의 약 40%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다는 정부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질병관리청은 최근 이 같은 결론을 얻은 뒤, 이달부터 연구 샘플을 대폭 늘려 백일해균의 항생제 내성을 다시 확인하는 대규모 재검사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백일해는 발열과 기침을 동반하는 급성 호흡기 질환이다. 백일해란 이름은 기침이 100일간 지속된다고 해서 붙여졌다. 작년 국내 감염자 수는 4만7888명이다. 전년(292명)의 164배로 폭증했다. 작년 11월엔 백일해로 인한 국내 첫 사망자가 나왔다.
이에 질병청은 올 초 폭증 원인 규명에 나섰다. 전국의 병원에서 받은 백일해균을 인공 배양해, 약제의 내성 여부를 시험할 수 있는 균주(菌株) 총 14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동일 유전자를 가진 세포 집단인 균주는 국내에선 질병청만 만들 수 있다.
질병청 실험 결과, 백일해 균주 14개 중 6개가 마크로라이드계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마크로라이드계 항생제는 호흡기 질환자에게 일차적으로 가장 많이 쓰는 항생제다. 흔히 ‘마이신’이라고 불린다.
의료계 관계자는 “작년 백일해 폭증의 주요 원인이 항생제 내성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라며 “항생제를 많이 쓰는 우리나라 환경에서 백일해균도 항생제 내성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했다.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은 8위였다. 정부는 국내 항생제 처방의 30% 정도를 ‘부적절한 처방’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백일해로 인한 입원율은 8% 정도로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편이다. 사망자도 한 명이었다. 전문가들은 “백일해균이 항생제 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백일해 피해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지난해 백일해로 인해 20~50명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편인 우리나라 DTaP(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백신 접종률(97%)이 증상의 악화와 광범위한 전파를 막는 주원인일 수 있다”며 “국내 많은 임신부가 맞고 있는 백일해 백신도 신생아에게 백일해 면역을 갖게 하는 요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