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건강 치료가 필요하지만 치료를 받지 않는 ‘그림자 환자’가 급증하는 데는 제도적인 이유도 있다. 정신 질환은 신체 질환에 비해 눈에 보이지 않고, 진단이 까다롭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은 “법과 제도 측면에서도 정신 질환은 차별받고 있다”고 했다.

정신과 치료는 실손의료보험으로 잘 보장되지 않고, 비급여 항목도 많다. 정신 질환에 대한 실손 보장은 2016년부터 2세대 실손보험에 표준 약관으로 포함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질병코드 F’로 시작하는 정신질환 78개 항목 중 38개 항목(48.7%)에 대해서만 보장된다. 반면 호흡기 질환이 포함돼 있는 ‘질병코드 J’ 항목 64개는 모두 실손 보장이 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신 질환의 경우 진단이 주로 환자의 진술과 행동 등에 의존하고, 발병 시점을 확인하기 어려워 상당수가 실손보험 보장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했다.

신체 질환에 비해 정신 질환은 중증 인정이나 장애 등급을 받기 힘들다. 예컨대 지능 장애·발달 장애 인정을 받으려면 지능 검사를 통해 70점 미만이 나와야 한다. 이에 대해 장원석 정신과 전문의는 “69점이나 71점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규정에 얽매여 표준화된 검사 결과로만 판단하려다 보니 중증이어도 인정을 못 받는 사례도 많다”고 했다.

입원이나 치료 절차도 까다롭다. 환자의 인권을 위해서지만, 다른 진료과에 비해 절차와 필요 서류가 많아 불편이 커진다. 한 국립대 병원에서는 호흡기 질환으로 입원 치료받던 환자가 정신 질환을 동시 진단받았는데도 곧바로 진료과를 옮기지 못하고 동의서 작성 등 별도 입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고 한다. 이해우​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은 서로 영향을 주며, 따로 분리 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며 " 협진 과정에서 정신과만 유독 다른 과에 비해 관련 절차들이 많이 까다롭다“​고 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관계자는 “정신과는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 가산 등 정부 지원에서도 다른 과에 비해 뒷전”이라며 “정신과 입원의 경우 급성기 환자에 대한 수가 구분이 없다 보니 일부에서 진료 기피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