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준(41·가명)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중소기업 공장 보안팀과 소규모 제조 업체 등을 옮겨가며 근무했다. 그는 15년 전 국민연금 보험료를 처음 납부했지만, 실직 상태였던 시기를 포함하면 아직 연금 수급을 위한 최소 가입 기간(10년)을 채우지 못했다. 현재도 실직 상태여서 연금 보험료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 재정 보강을 위한 모수 개혁이 국회에서 일단락된 가운데, 경기 침체 등으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못하거나 국민연금 가입률이 낮은 특수 형태 근로자 등 ‘연금 사각지대‘가 전체 경제활동층의 3분의 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민연금 최고 수급액이 부부 합산 월 542만원에 달했지만, 연금 납부 기간이 짧고 소득 수준이 낮은 가입자 가운데 연금만으로는 노후 대비가 어려운 이도 적지 않다.
6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작년 11월 기준 국민연금 가입 대상인 18~59세 2994만명 가운데 국민연금에 가입해 정상 납부 중인 사람은 1788만명(59.7%)이다. 또 181만명(6.1%)은 국민연금 가입 대상은 아니지만, 공무원·사학연금 등 직역 연금 가입자로 노후 대비에 비교적 문제가 없는 이들이다.
반면 국민연금에 가입했지만 사업 중단, 실직·휴직 등으로 소득이 없어 국민연금 납부 대상에서 일시적으로 제외됐거나 13개월 이상 체납한 사람(납부 예외자, 장기 체납자)이 342만명(11.4%)에 이른다.
특히 특수 고용직이나 프리랜서 등 지역 가입자 대상이 되는 고용 방식을 중심으로 국민연금 미가입자도 683만명(22.8%)에 이르렀다.
국민연금 납부 예외자·체납자에 미가입자를 합친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총 1025만명(가입 대상 인구 대비 34.2%)에 달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주 경제활동층(18~59세) 셋 중 한 명은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 대비에서 소외돼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사정상 국민연금을 낼 수 없는 납부 예외자는 2020년 309만8000명에서 작년 11월 278만명까지 줄었다. 장기 체납자도 같은 기간 104만7000명에서 64만명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수가 여전히 국민연금을 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18세 이상, 60세 미만 국민이라면 의무적으로 가입한다. 소득 없는 학생이나 주부 등도 본인이 원하면 가입할 수 있다. 국민연금에 가입했더라도 사업을 중단한 자영업자나 실직자 등은 보험료 납부가 일시 정지되는 ‘납부 유예자’ 신분이 된다. 납부 유예자로 있는 기간은 연금 수령을 위한 가입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보험료 장기 체납 시기도 연금 가입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최소 10년 가입을 채우지 못하면 연금을 못 받고, 10년이 넘더라도 체납 기간이 길어지면 연금 수령액이 줄어든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자나 프리랜서 상당수도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배달 라이더는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로 분류돼 지역 가입자로 가입해야 하는데, 회사와 보험료를 절반씩 나눠 내는 직장인과 달리 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 가입률이 낮다. 프리랜서도 사정이 비슷하다. 또한 월 60시간 미만 근무하는 비정규직 단시간 근로자는 국민연금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다.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동만 한국플랫폼 프리랜서 노동공제회 이사장은 “국민연금이 기본적으로 정규직과 전일제 노동을 전제로 설계한 사회보험 제도이다 보니, 비정규직이나 단시간 근로자 등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이들이 노후 빈곤에 시달리면 향후 기초생활수급자 증가 등으로 결국 세금을 통한 국민 부담이 커진다는 점이다. 정부는 저소득 근로자를 위해 국민연금 등 보험료를 지원해 주는 ‘두루누리 사업‘을 2012년 도입했고, 지역 가입자 중 납부 재개자의 보험료 50%를 1년 동안 지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용하 전 국민연금연구원장은 “국민연금에 소득 재분배 기능이 있다지만 저소득층 상당수는 보험료를 내지 않아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국민연금을 보완하는 기초연금 재편 등 연금 구조 개혁으로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