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비 신부 박모(30)씨는 내년 초 결혼식을 목표로 이곳저곳을 알아봤지만 아직 예식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예식장은 상담 예약을 위해 정확한 날짜와 시각에 문의할 것을 요구해 전화 연결조차 쉽지 않았다. 예비부부가 친구들까지 동원해 수십 통 전화한 끝에 상담 예약에 성공했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아봤던 예상 금액보다 1000만원 이상을 더 요구받자 예약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 서울 내 예식장 5곳을 더 알아봤지만 대부분 내년 상반기까지 예약이 마감됐다며 ‘내년 하반기 예약분은 언제 신청이 가능할지 미정’이라고 했다. 박씨는 “이제는 결혼 준비에 지친다”며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최근 박씨처럼 “결혼식을 하기 너무 어렵다”고 토로하는 예비부부가 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 시기 ‘사회적 거리 두기’를 거치면서 20% 급감했던 예식장 수가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전국 예식장은 코로나 사태를 전후해 2019년 890곳에서 지난해 714곳으로 19.8% 줄었다. 최근 예식장이 조금씩 늘고는 있지만, 최근의 결혼 수요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예식장이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예식홀 대관 비용은 코로나 발생 후인 2021년 896만원에서 올해 1401만원으로 56.4% 치솟았다(결혼 정보업체 듀오의 매년 설문 조사). 코로나로 예식장들이 타격을 받기 전 가격 수준(2019년·1345만원)을 넘어선 것이다.
◇56% 치솟은 예식장 비용, 그마저도 하늘의 별따기
이런 가운데 예비부부들은 고질적인 예식장 관련 정보 부족에 고통받고 있다. 예식장 대관료와 식대 등 복잡한 예식 비용을 비롯해 예약이 가능한지 여부, 언제 예약 신청이 열리는지 등 전부 예식장 측이 정보를 틀어쥐고 공개하지 않는 깜깜이 상황이다.
예비부부 사이에서 ‘교통 편리하고, 가격이 합리적’이란 평가를 받는 서울 여의도의 한 웨딩홀은 현재 내년 6월까지 모든 예약이 끝난 상태다. 내년 7~12월 예약분은 언제 신청이 가능할지 미정이다. 이 예식장 관계자는 “오는 6월 말 이후 내년 하반기 예식장 예약이 가능해질 것 같다”며 “웨딩홀 인스타그램(소셜미디어)을 잘 보면 공지가 올라올 것”이라고 했다.
예비부부들 사이에선 “돈이 있어도, 없어도 결혼식장 잡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오는 9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 신모(31)씨는 “‘가성비’가 좋다는 한 예식장에 어렵게 상담 예약을 잡아서 방문했지만, ‘이미 1년 반 후까지 예약이 다 찼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곳저곳 알아보니 예식비가 비싼 특급 호텔은 상황이 좀 나은 편이고, ‘중급’ 정도의 웨딩홀은 정말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했다. 정해진 예산 범위에서 식을 올리려는 예비부부들은 교통이 편하고 식사 등이 무난해 선택 가능한 예식장은 몇 곳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식과 함께 학회·콘퍼런스 등 행사도 진행하는 호텔이나 컨벤션홀에서는 장기 고객이 될 수 있는 기업·기관 행사를 예식보다 선호한다고 한다.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은 예식 성수기인 내년 4월 단 이틀만 웨딩 예약을 받았다. 이 호텔 관계자는 “기업 행사 예약을 먼저 잡고, 남은 기간 예식 예약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물가 상승으로 예식 비용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예식장 사정에 맞춰 쫓기듯이 결혼하는 이들도 일부 있다. 지난해 말 결혼한 이모(30)씨는 “당초 작년 10~11월 결혼을 하려고 ‘가성비’가 좋다는 한 웨딩홀에 여러 차례 예약을 시도했지만 식장을 잡을 수 없었다”며 “해가 넘어가면 예식 가격이 또 오를 것 같아 가능한 날짜로 제시받은 12월에 허겁지겁 식을 올렸다”고 했다. 예식 비용은 꽃과 액자 장식 등 각종 옵션에 따라 가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문제는 예식 비용 등 조건을 예비부부들이 미리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식장은 결혼 시즌(계절)·요일·시간대 등에 따라 가격이 다르고 항목별 요구 금액이 복잡하다. 게다가 ‘사전 상담’을 위한 예약을 잡기조차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예비부부들이 예식장 정보를 찾아 소셜미디어 후기를 찾아 헤매거나 먼저 결혼한 친구에게 귀동냥을 하지만, 막상 상담해 보면 “잘못된 정보”라는 답을 들을 때가 많다.
이에 대해 예식장 관계자들은 “코로나 시기 결혼식이 줄줄이 취소되며 폐업한 곳들을 중심으로 최근 영업을 재개하기 시작한 상황”이라며 “일부러 가격을 올려받거나 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결혼식이 큰 부담으로 다가온 결혼 적령기 청년들 사이에선 신(新)연애 풍속도 등장했다. 예비 신부 정모(29)씨는 지난해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 친구와 연애를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서울 강남구의 한 웨딩홀을 예약했다. 함께 웨딩 박람회에 들렀다가 자연스럽게 결정했다고 한다. 정씨는 “1년 정도 연애를 하고 나서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 2~3년 후에야 결혼할 수 있을 것”이라며 “6개월 전에만 취소하면 계약금을 돌려준다고 해 부담도 없다”고 했다. ‘만에 하나 연애하다 헤어지면, 예약은 그때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결혼식장 선점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청혼의 트렌드 역시 바뀌었다. 청혼하고 결혼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식장 예약, 스튜디오 촬영 등 결혼 준비 과정을 다 마치고 나서 예식 직전에 청혼하는 경우가 많다. 청혼이 “나랑 결혼해 줄래”가 아니라,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정부는 예식장 정보 공개 등 대책을 여러 차례 발표했지만, 바뀐 건 거의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주요 결혼식장·웨딩플래너 업체와 서비스 가격을 자사 홈페이지나 한국소비자원이 운영하는 정보 사이트 ‘참가격’에 공개하는 내용의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월부터 정보가 공개되고 있지만, 14일 현재 참가격을 통해 가격이 공개된 결혼식장은 단 1곳뿐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강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참여하는 곳이 아직 많지는 않다”며 “앞으로 참여 업체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