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통이 좋아 신혼부부들이 선호하는 서울 서초구 A 예식장은 2021년 1인당 식대가 6만8000원이었다. 매년 쉬지 않고 오르더니, 올해는 1인당 9만7000원을 받고 있다. 4년 새 42.6% 인상한 것이다. 가격은 올랐지만 메뉴는 그대로다.
23일 본지가 서울 주요 예식장 다섯 곳의 지난 몇 년 치 이용자 후기를 비교한 결과, 올해 식대는 2021년보다 40% 수준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외식’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20.4%·통계청)의 배가 오른 셈이다.
높아진 결혼 비용의 상당 부분이 과도한 식대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결혼식 식대’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합쳐 ‘식대플레이션’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다.
식대는 예식 비용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하객 200~300명의 1인당 식대가 8만원이라면, 밥값으로만 1600만~24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결혼식 식대는 수백 명분을 선(先)예약하기 때문에 하객이 예상보다 적게 오더라도 돈을 다 내야 한다. 신혼부부와 하객들 사이에선 “갈수록 높아지는 식대에 비해 음식 질이 크게 못 미친다”는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국민의힘은 이날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표준 계약서 도입’과 ‘공공 예식장 확대’ 등이 담긴 결혼·육아 지원 대선 공약을 발표했다. 청년들의 결혼 비용을 최대한 줄여 ‘결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식대 뛰어도 음식 그대로… 하객 적은데도 250인분 청구"
서울 강남구의 B 예식장은 2021년 1인당 식대가 6만2000원이었다. 그러나 2023년 7만7000원으로 오르더니, 올해는 8만8000원이 됐다. 4년 새 41.9% 오른 것이다. 서울 중구의 C 예식장도 2019년 5만~6만원 선이던 1인당 기본 식대가 지금은 6만5000~8만원이 됐다. C 예식장 관계자는 “음료와 주류는 별도 계산하기 때문에, 손님 1명당 실제 비용은 10만원 정도로 보면 된다”고 했다.
최근 서울 강북에도 예식장 식대가 한 명당 7만~8만원을 넘는 곳이 적지 않다. 강남권은 식대가 8만~9만원을 넘어 10만원에 육박한다. 일반적 웨딩홀이 아닌 고급 호텔은 1인당 식대가 20만원을 넘어간다. 경기도 수원에서 결혼을 준비 중인 한 직장인은 “시설이 괜찮다고 생각한 한 예식장에서 식대 9만원을 불러 놀랐다”며 “알고 보니 3년 전 6만원이었는데 1년에 1만원씩 올렸더라”고 했다.
지방 주요 도시에서도 지난해 5만원대이던 식대가 올해는 6만원 중·후반대로 올랐다. 광주광역시에서 최근 결혼 준비를 시작한 예비 신부 정모(26)씨는 “1인당 식대를 5만~6만원 정도로 생각했는데, 상담하러 갔더니 7만~8만원을 불러 충격받았다”며 “작년만 해도 가장 저렴한 곳은 4만5000원짜리도 있다고 들었는데 올해는 5만원 아래 예식장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신혼부부들은 “예식장 비용은 ‘오늘’이 가장 싸다”며 “어쩔 수 없이 계약한다”고 했다.
웨딩홀이 정한 식사 제공 최소 인원인 ‘보증 인원’도 식대를 따라 올라가는 추세다. 보증 인원보다 적은 인원이 와도 신혼부부는 그만큼의 식대를 모두 내야 한다. 식장 규모에 따라 200~300명이 관례였는데, 최근 낮 시간 등 인기 있는 시간의 보증 인원은 적어도 250명 이상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일부 예식장은 300명 이상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과도하게 ‘큰 결혼식’을 유도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예비 신부 김모(36)씨는 “너무 크지 않게 적당한 규모로 결혼식을 치르고 싶었는데, 보증 인원이 200명 이하인 식장은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올해 초 결혼한 신부 조모(26)씨는 “당초 300명으로 보증 인원을 설정했는데, ‘손님이 좀 더 올 수 있다’고 하니 예식장에서 보증 인원을 50명이나 늘렸다”며 “실제로 더 온 건 30명이라 20명어치는 먹지도 않았는데도 돈을 냈다”고 하소연했다.
식을 몇 시에 하는지, 몇 월에 치르는지에 따라 식대가 달라지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지난달 결혼한 신부 김모(29)씨는 “사람이 몰리는 인기 시간대에 예식장 대관료가 오르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음식 값까지 덩달아 높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실제 서울 강남구의 한 예식장은 비수기인 오는 6월 계약분에서는 식대가 6만원대였지만 성수기인 오는 5월과 10월 계약분은 식대가 8만원 초반~8만원 후반대로 치솟았다.
이런 문제 지적에 대해 예식장 운영 업체들은 “지난 몇 년간 식재료 가격과 인건비가 크게 올랐고,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월 임차료 부담도 커졌다”고 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결혼·육아 공약으로 ‘스·드·메’ 서비스 거래에 표준 계약서를 도입하고, 가격 표시제, 보증보험 가입 및 영업 보증금 제도 등을 통해 소비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겠다고 23일 밝혔다. 결혼 서비스 관련 정보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피해 구제 근거를 마련하는 ‘결혼서비스법’ 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공원·미술관·박물관·문화회관 등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시설을 예식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하고, 정부가 운영하는 통합 예식장 신청 온라인 플랫폼도 갖출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