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된 잠룡주'로 분류되는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금이 지방분권형 개헌의 적기"라며 "개헌에 반대하는 사람이 반민주주의자"라고 했다. '엄근진' 이미지와 달리 많이 웃는 사람이었다. /김지호 기자
'저평가된 잠룡주'로 분류되는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금이 지방분권형 개헌의 적기"라며 "개헌에 반대하는 사람이 반민주주의자"라고 했다. '엄근진' 이미지와 달리 많이 웃는 사람이었다. /김지호 기자

‘서인부대’라는 말은 유정복의 인천시장 초임 때 생겼다. 도시 경쟁력 순위가 ‘서울-인천-부산-대구’ 순이란 뜻이다. 박남춘 시장 때 3위로 밀렸지만, 유정복이 재선되면서 다시 2위로 올라섰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인천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117조원으로, 6년 만에 부산(114조원)을 추월했다. 실질경제성장률(4.8%)은 전국 1위다.

기세를 몰아 ‘지방분권 개헌’을 들고나왔다. 내전을 부추기는 패거리 정치를 끝내야 한다며 ‘정치중대재해처벌법’ 제정도 촉구한다. ‘저평가 잠룡주’에 속하는 유정복이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말들이 나온다.

◇내전 부추기는 패거리 정치

-대선을 준비하나?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조기 대선을 논하는 건 적절치 않다.”

-지방분권 개헌은 조기 대선을 전제한 것 아닌가?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장으로서 한 말이다. 계엄·탄핵 사태로 인한 오늘의 국정 혼란은 중앙 집중의 특권 문화와 서열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방분권이 작동하지 않은 탓에 오늘의 위기가 왔다는 건가?

“산업화 시대 고도 성장 수단으로 강력한 집행력을 발휘해 온 중앙집권적 정치는 수명을 다했다. 중앙정부, 중앙당 중심의 정치가 극단적 진영 정치의 온상으로 작용하면서 무지성·무비판적 정치 문화를 낳았다.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당대표 앞에 줄 서는 패거리 위선 정치가 내전을 부추기고 있다.”

-기재부·행안부·교육부를 해체 수준으로 혁신하라고 했던데.

“지방자치를 시행한 지 30년이지만 지자체는 현재 다섯 살 수준의 어린아이다. 특히 재정적 측면에서 지자체의 가용 재원은 5~10%에 불과하다. 90~95%는 중앙정부, 상급 단체와의 매칭 보조금이 차지한다. 기재부는 각종 보조금과 교부세를 통해 지방정부를 지배하고, 행안부는 인사권을 갖고 통제한다. 인천시만 해도 행정부시장, 기획조정실장을 정부가 임명한다.”

-개헌안을 구체화하고 있다던데.

“재정 분권이 핵심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국가와 지방의 세입 구조가 6대4인데, 우리는 8대2로 지방 재정권이 취약하다. 자치 재정권, 자치 입법권을 구축하기 위한 조항들이 포함될 것이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유정복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을 접견하며 악수하고 있다. 2025.02.05 /남강호 기자

◇개헌 반대하는 사람이 민주주의 敵

-정치중대재해처벌법은 뭔가?

“우리나라 권력 기관은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는다. 헌법에 예산안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에 심의·의결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제때에 예산이 통과되는 걸 본 일이 없다. 선거법 위반의 경우 6·3·3 원칙에 따라 재판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사법부는 지키지 않는다. 그러면서 국민에게 법을 강요하고 민주주의와 법치를 얘기할 수 있나?”

-국민소환제 같은 것인가?

“산업 현장에 적용하는 중대재해처벌법처럼, 국민 삶에 피해를 주는 헌법 기관의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현재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국회와 절차법·증거법을 지키지 않는 헌법재판소를 향한 국민의 불신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엔 찬성하는 입장 아니었나?

“어떤 경우에도 헌정이 중단되거나 국가가 불행해지는 사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임기 단축, 책임 내각 구성 등 대통령의 책임 있는 조치로 탄핵만은 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국회의 폭주를 막기 위해 중·대선거구제와 양원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선거구제는 승자 독식의 일방적 결과만 나온다. 22대 총선에서도 1당과 2당의 득표율 차이가 5.4%포인트밖에 나지 않았지만 1당이 절대 의석을 가지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한 선거구에서 2인 이상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가 되면 영호남이 어느 한쪽 정당으로 쏠리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양원제는 생소하다.

“국회가 발의하는 법안을 제어·통제·조정하는 기능이 절실하다. 일본·영국 등 입헌군주제 국가에서는 왕실이 그 역할을 하고, 미국은 상·하원으로 구분된 양원제가 그 기능을 한다. 우리는 50여 광역 단위에서 상원 의원을 선출해 의회 권력 남용을 견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개헌보다 내란 극복이 우선이라는데.

“그 당에서 ‘특검을 반대하는 사람이 범인’이란 플래카드를 건 적이 있다. 지금은 ‘개헌에 반대하는 사람이 반(反)민주주의고 대역죄인’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저출생 정책의 일환으로 만든 '천원주택'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원주택'은 하루 임대료 1000원, 월 3만 원으로 주거를 제공하는 인천형 저출생 주거정책으로, 결혼 7년 이내의 신혼부부 또는 예비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최초 2년부터 최대 6년까지 지원한다. /뉴시스

◇아기 낳으면 1억? 인천이 원조

-인천이 부산을 넘어 제2의 경제도시로 도약했다는 뉴스가 화제였다.

“부산시민들께는 죄송하지만, 경제 규모는 이미 인천이 부산을 추월했고, 경제성장률 역시 압도적으로 높다. 인구 차이도 25만명으로 줄었다.”

-서울과 가까워 그 인프라를 누린 건 아닐까?

“서울과 가까운 위성도시가 많지만 인구가 줄고 경기 침체를 겪는 곳이 태반이다. 사람들은 기회를 쫓아 이동한다. 주식처럼 미래 가치가 있는 곳을 보고 움직인다.”

-인천국제공항, 항만, 경제자유구역이 받쳐주니 어떤 시장이 와도 인천은 성장할 것 같은데.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정책 결정권자의 철학과 비전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다. 내가 시장일 때 2위 도시로 거듭 도약한 것이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는 정책에 집중했다. 영종도에 파라다이스·인스파이어·RFKR 같은 복합 리조트를 유치했고, 경인고속도로 지하화, 인천발 KTX 개통, 재외동포청 설립을 확정 지었다. 15~29세 청년 인구가 지난해 부산을 처음 역전한 이유다.”

-저출생 정책의 효과가 크다고 들었다.

“지난해 인천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전년 대비 11.2% 증가해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아이를 낳으면 1억 주고, 집도 주고, 차비도 준다’가 우리 정책의 핵심이다. 부영그룹이 1억 준다고 화제였는데, 인천이 원조다(웃음). 정부 지원금 7200만원에 ‘아이 꿈 수당’이란 명목으로 2800만원을 얹어 18세까지 1억원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천 원 주택’도 화제였다.

“하루 1000원, 한 달 3만원, 1년 36만원에 집을 빌려주는 정책이다. 올해 1000가구를 공급하는데 신혼부부들 반응이 엄청나다.”

-막대한 재정은 어떻게 마련하나?

“저출생 3종 정책에 드는 예산이 700억원이다. 인천시 전체 예산(15조원)의 0.5%가 안 된다. 가성비 최고 아닌가.”

-다음 선거를 위해 재정을 통 크게 풀고 싶은 유혹도 들 텐데.

“11년 전 인천시장에 처음 당선됐을 때 인천시 채무 비율이 39.9%였다. 역대 시장들이 자기 하고 싶은 사업을 하려고 빚을 늘리기만 해 재정 불능 상태에 이른 것이다. 13조원이 넘는 채무에 하루 이자만 12억원. 내무부 관료 시절 재정 문제를 다룬 경험을 살려 특단의 노력을 기울였고,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을 12%까지 낮췄다. 시민 세금을 내 돈처럼 쓰는 건 범죄다.”

2025년 2월 11일 인천광역시청. 유정복 인청광역시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지호 기자

◇엘리트와 이리 떼

-민선 김포군수로 정치에 입문한 게 38세였더라.

“주민들이 제발 출마해 달라고 시위해서 무소속으로 나왔다(웃음).”

-어떻게 일했길래.

“민선에 앞서 관선 군수로 일할 때 ‘허가과’를 만들었다. 공장 하나 허가받으려면 건축과, 농산과, 주택과, 지역경제과를 돌며 몇 달이 걸리길래 각 과의 허가 업무를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게 했다. 이 정책으로 김대중 대통령에게 불려갔다. 아마 군수 최초로 국무회의에 들어간 사람일 거다(웃음).”

-김포시장 시절엔 쌀 광고도 했다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김인문, 전원주 선생과 함께. 지하철에 농산물 광고를 시작한 것도 김포시가 처음이다.”

-인천은 공해가 된 정치 현수막을 정비한 첫 지자체였다.

“평등권, 선거법 위배라고 판단했다. 일반 시민들은 지정 게시대에 돈 내고 현수막을 거는데 정치인은 아무 데나 걸어도 되나? 정치 후진국의 민낯을 보여주는 흉물이라 지정 게시대에만 현수막을 걸도록 조례를 제정했다.”

-여러 성취에 비하면 대중적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한국에서 정치인으로 주목을 끌려면 사고도 좀 치고, 막말과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쪽엔 재능이 없다. 장관 청문회 때도 아무 문제 없이 통과돼 내가 장관 된 줄 모르는 분도 많더라(웃음).”

-7남매라 청탁 잡음은 한두 건 있을 법한데.

“어머니가 ‘정복이 있는 곳엔 얼씬도 말라’ 엄명을 내리셔서 형님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셨다. 둘째 형님은 내가 인천시장에 당선된 날 30년 해온 건설 회사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셨다.”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연패해 ‘유정복은 끝났다’는 말도 있었다.

“관용차 없이 버스를 타고, 재래시장 순댓국을 먹으며 정책은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나온다는 걸 실감했다. 지역 균형 발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한 시간이다. 경제적 가치, 정치적 이익으로 따지면 도서(島嶼)가 대부분인 옹진군은 인천시 300만 인구 중 2만명에 불과한 지역이지만, 표(票) 중심 사고로는 시민을 위한 진정한 정책이 나올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재선 후 인천의 모든 섬에 가는 배편을 버스비 1500원이면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연평도·백령도 등 서해 5도 주민들의 정주금을 10만원에서 18만원으로 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서해 5도에 사시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은 애국자다.”

-거듭된 낙선이 약이 됐을까?

“대학 은사인 이극찬 교수님이 ‘엘리트는 잘못하면 이리 떼가 된다’고 하셨다. 정자정야(政者正也), 정치는 올바름이어야 한다.”

-그런 ‘범생이’ 틀을 벗어나야 인기를 얻을 텐데.

“하나만 묻자. 당신이라면 초보 운전자에게 당신의 목숨을 맡길 것인가, 난폭 운전자에게 맡길 것인가. 나라면 모범 운전자에게 맡길 것이다(웃음).”

☞유정복

1957년 인천 출생. 제물포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재학중 행정고시에 합격, 내무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김포군수, 김포시장을 거쳐 17·18·19대 국회의원에 선출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농림수산부 장관, 박근혜 정부에서 안전행정부 장관을 지냈다. 민선 6기 인천시장에 이어 2022년 재선에 성공했다.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