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cel
Cancel
live

초등학생 때 리코더 대회에 나가 상장과 함께 받은 흰 봉투엔 ‘문상’이 들어있었다. 또래 친구들은 문화상품권을 줄여 문상이라 불렀다. 만 원짜리 문상 하나로 집에 가는 길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게임 캐시로 바꿀까, 영화를 보러 갈까, 엄마한테 말하면 책 사라고 하겠지…. 명절날 현금으로 받는 용돈만큼이나 기다려지는 게 학교에서 받는 문상이었다. 잃어버릴까 노심초사, 동전으로 PIN 번호 긁는 재미,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받았다는 뿌듯함까지 상품권 종이 한 장에 여러 마음이 녹아있었다.

시간이 흘러 상품권 세대가 경제 활동을 할 나이가 됐다.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제휴처도 많이 늘었다. 덕분에 온라인에서 싸게 산 상품권으로 소소한 재테크를 할 수도 있었다. 1만원짜리 상품권을 9000원대로 사서 현금처럼 쓴다면 높은 할인율을 적용받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월급을 받으면 아예 상품권 여러 장을 사놓고 다이소에서 생활용품을 사거나,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아파트 관리비를 내거나, 직장 동료의 생일 때마다 나눠 주는 이들도 여럿 생겨났다.

그러다 지난달 말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해피머니, 컬쳐랜드에서 발행한 상품권을 게임 업체, 마트, 서점 같은 제휴처에서 모두 사용을 막아 버렸다. 서울 명동과 강남의 대규모 상품권 거래소들도 이 상품권들의 매입을 거부했다. 미리 사 둔 상품권이 한 순간에 휴지 조각이 돼버린 것이다. 이후 컬쳐랜드 상품권은 순차적으로 정상화됐지만 해피머니 상품권은 여전히 불능 상태다. 사용하지 않은 상품권인데 환불조차 불가능하다.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진 건 티몬과 위메프 탓이었다. 상품권을 할인율 10%대로 싸게 팔아치워 단기간에 현금을 모으고는 상품권 발행 업체에 대금을 정산해 주지 않았다. 상품권 발행 업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제휴처들도 발 빠르게 두 상품권 사용을 막았다. 상품권 사용 자체가 막혀 티몬과 위메프에서 사지 않았더라도 소비자들 역시 피해를 봤다. 수년째 빚이 자산보다 많은 상태에 빠져있던 해피머니는 환불 신청을 받다가 지난달 31일 입장을 바꾸고 환불을 중단했다.

사태는 커졌는데 상품권 금액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는 피해자들은 거리로 나왔다.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해피머니 본사까지 찾아갔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해피머니 대표를 경찰에 사기죄로 고소하고 여신금융협회, 한국소비자원에 민원도 날마다 수백 건씩 넣었다.

이들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상품권으로 ‘깡’ 하려던 것 아니냐’ ‘그 정도 위험 손실도 고려 못 하고 재테크를 했냐’는 반응들이다. 수천만 원대 상품권으로 높은 마진을 남긴 이도 있겠지만, 이번 사태 피해자 대부분은 몇 푼이라도 아끼려 상품권을 샀던 이들이다. 상품권 세대의 이런 살림법은 티몬과 위메프의 탐욕스러운 기업 운영 앞에 헛된 일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