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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저출생 극복을 위한 대규모 민간 주도 조직이 새로 출범했다. 경제계, 금융계, 학계, 방송계, 종교계가 참여한다. 성인 남녀가 불교 사찰에서 소중한 인연을 찾는 ‘나는 절로’ 같은 신선한 아이디어가 더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울 한 곳에서 이 단체 출범식이 열렸고, 나중에 그날 행사 사진을 보게 됐다. 보는 순간 맥이 빠졌다. 앞뒤 두 줄로 26명이 나란히 서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 자세를 취했는데, 26명 중 여성은 단 한 명이었다. 남성 대부분은 정장, 넥타이, 검은 구두 차림이었다.

이 단체의 공동 대표 5명은 스님 한 명을 포함해 모두 남성이었다. 명망 있고 각자 분야에서 존경받는 인물들이지만, 2024년 ‘엄마 아빠’들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이날 한 공동 대표는 AI(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자율 주행 유모차를 저출생 대책으로 언급했다고 한다. 행사 참석자들은 “농담인 줄 알았다”고 했다.

물론 이 단체 출범을 계기로 현장 곳곳에서 치열하게 저출생 대책을 고민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노력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다만, 너무도 민감한 저출생 대책을 마련한다면서 시작부터 ‘섬세함’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단체 사진 속 넥타이 맨 남성들에 가려 뒷줄에서 얼굴 반쯤만 겨우 나온 여성 한 명이 눈에 밟혔다.

그 단체 사진을 지적하며 동시에 스스로 돌아봤다. 독신 미혼에게 출산과 육아는 미지의 세계다. ‘육아는 돕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일종의 육아 격언부터 새겼다.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세상 천진난만한 어린 자녀와 따뜻하게 소통하는 부모의 대화법도 간접 경험하고 있다. 이런 영상에 달린 ‘이게 출산 장려 영상’ 댓글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긴장감을 놓진 않아야 한다. 최근 만난 한 딸바보 아빠는 “아이가 아무리 얌전해도 다른 부모 앞에서 ‘육아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말하면 큰일 난다”며 “일단 아들 육아와 딸 육아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별, 기질에 따라 좌충우돌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다. 책 한 권을 주면 얌전히 책을 읽는 아이, 신나게 저 멀리 집어 던지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언젠가 내 일이 돼 출산과 육아를 현명히 해내려면 ‘섬세함’을 어떻게든 갖춰야겠다 싶었다.

굳이 몇 달이나 지나 한 단체의 출범식 단체 사진을 꼬집는 이유는, 올해 3분기 출생아 수가 늘고 출산율도 반등한다는 최근 통계 수치가 나와 상관없지만 괜히 반가운 이유와 같다. 얼마 전 아들을 가족으로 맞이한 친구, 네 자녀를 키우는 친척 가정처럼 당장 주변만 돌아봐도, 진심으로 이 단체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 단체의 출범 슬로건은 ‘우리 아이 우리 미래’였다. ‘우리’가 두 번이나 등장하는 이유는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어느 속담과 같은 뜻이라 생각했다. 이 단체의 내년 기념사진은 달라지길 기대한다. 삐뚤빼뚤 줄을 못 맞추더라도 아이들이 웃고 뛰어노는 모습이 모두 바라는 저출생 극복의 시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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