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대장경.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트위터를 일컫는 말이다. 지난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그가 몇 년 동안 쓴 트윗만 모아도 오늘날 그와 현 정권의 행태를 비판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온갖 사안에서 조만대장경의 예언은 수도 없이 빛을 발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대체 왜 조국은 본인의 트위터 계정을 그대로 두는 것일까?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들춰내 조롱거리로 삼는데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나는 조국 본인이 아니고, 그와 인터뷰를 해보지도 않았다. 요컨대 내 말은 ‘정답’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해석’은 가능하다. 숱한 비난과 조롱 속에서도 본인의 SNS 계정을 꿋꿋이 유지하는 것은 ‘파워트립(power trip)’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파워트립을 “누군가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활동이나 행동 방식” 혹은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권력을 휘두르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행동”으로 정의한다. 한국어로 옮기자면 ‘권력 과시’라고 할 수 있겠다.
내로남불이라고 욕을 먹는 것이 어떻게 권력 과시인가? 여기서 핵심은 한 입으로 두말한다는 게 아니다. 진실을 무시해도 아무 탈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 진나라 환관 조고가 저지른 ‘지록위마( 指鹿爲馬)’의 고사를 떠올려보자. 사슴을 갖다 놓고 말이라고 우긴다. 조고를 두려워한 신하들은 입을 모아 사슴을 말이라고 부른다. 어리석은 임금 호해는 어리둥절한 채 조고의 ‘말’을 진상받았다. 역사에 기록된 파워트립 사례다.
좀 더 현대적인 예를 들어보자. 영화 ‘넘버3′의 한 장면. 영세 조직폭력단 불사파의 두목이 부하들에게 훈계하다가 육상에서 금메달 세 개 딴 선수를 현정화라고 말했다. 부하가 임춘애라고 정정해주자 두들겨 팬다. 화가 나서 말을 더듬고 씩씩거리며 ‘내가 하늘이 빨간색이라면 빨간색’이라고 우긴다. “내 말에 토 다는 X끼는 전부 배반형이야, 배반형!” 형님의 권위를 지키는 중대한 과업 앞에 운동선수 이름이나 하늘 색깔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가정, 직장, 군대, 기타 사회적 부조리는 파워트립과 종종 포개진다. 똑같은 국인데 어제는 짜다고 해놓고 오늘은 싱겁다고 하는 시어머니, 오늘 일찍 퇴근하기로 하고 다 같이 회식하자는 부장님, 특별한 설명도 없이 같은 서류를 몇 번씩 돌려보내는 담당자 등. 이들에게는 모두 그 나름의 이유와 근거가 있겠으나, 앞뒤가 안 맞는 말과 행동을 해도 아무 탈이 없는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즐기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조만대장경을 방치한 채 논란을 관망하는 조국의 행동은 그런 면에서 파워트립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너희는 떠들어라, 내가 귓등으로라도 들을 성싶으냐, 이런 눈빛으로 국민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는지. 이 또한 나의 해석일 뿐이나, 어쩌면 그는 ‘대중의 오해를 용납하고 비판을 관대하게 묵인하는 나’라는 자기 이미지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국은 586세대 강남 좌파의 아이콘이다. 젊은 세대는 수많은 조국'들'을 견디며 살고 있다. 특히 여당과 청와대에는 조국'들'이 즐비하다. 역사가 희비극을 오가며 반복되듯, 법무장관 조국의 뒤를 이은 추미애의 존재는 더 이상 농담거리가 아니다. 법치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으니 말이다. 조만대장경은 한 폴리페서의 자아도취를 넘어, 말이 통하지 않는 정치, 상식을 무시하고 법치를 파괴하는 정치, 그런 미래를 보여주는 예언서였던 것이다.
야당에 비토권이 있으니 공수처법은 정당하다고 해놓고 야당이 반대해서 공수처가 연내 출범할 수 없으니 법을 바꾸겠다는 둥, 지자체장의 성범죄 때문에 치를 재보궐 선거를 두고 ‘전 국민 성인지 감수성 학습 기회’라는 둥, 말 같지도 않은 말이 쏟아지는 이유다. ‘넘버3′의 송강호 말투로 읽어보면 단번에 이해될 것이다. ‘내가 사찰이라고 하면 사찰이고, 내가 노무현 공항이라고 하면 노무현 공항이야. 내 말에 토, 토 달면 토착 왜구, 저, 적폐야 적폐!’
언제부턴가 조만대장경을 봐도 더는 웃기지 않는다. 저들이 우리 면전에 ‘거짓말을 해도 되는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조고의 지록위마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불사파에 맞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