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드러난 표심(票心) 때문이다. 이들의 투표 성향은 불과 1년 만에 극적으로 반전했다. 작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열렬히 지지했던 이들이 이번에는 보란 듯 싸늘하게 등을 돌린 것이다. 여권 기질의 40대와 야권 성향의 50·60대 이상의 정치적 선택에는 큰 변화가 없었기에 선거의 승부는 이들의 ‘스윙 보팅(swing voting)’이 가른 셈이다. 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20대 이하의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19%로, 60대의 경우보다도 훨씬 낮았다.
1700만명 정도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3%쯤 차지하는 20·30세대는 ‘MZ세대’라 불린다. 밀레니얼을 의미하는 M세대는 1980년~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연령 집단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Z세대는 세대별 문화적 특성을 강조하는 X세대나 Y세대 식 개념으로, 디지털 라이프와 글로벌 마인드가 트레이드마크다. 현재로서 Z세대는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인구 집단을 가리키지만 꼬리가 길어질 수도 있다. M세대와 Z세대는 이처럼 기준이 약간 다르다. 두 세대에 보다 확실한 공통점이 있다면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가 공기처럼 본디 존재하는 시대에 자랐다는 점일 것이다.
MZ세대는 우연한 탄생 덕분에 완전한 시민권을 ‘선물’로 받게 된 우리나라의 첫 세대이다. 해방 후 건국과 더불어 시작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제대로 꽃피지 못했다. 마침내 그것이 우리의 일상적 삶의 일부가 된 것은 MZ 이전 구세대들이 수십 년 동안 벌인 아스팔트 위에서 힘겨운 투쟁과 산업 현장에서의 값진 분투 덕분이다. 이에 반해 MZ세대 스스로는 민주화 역정에 직접 참여한 바 없다.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어쩌다 시민(accidental citizen)’으로 운 좋게 태어났을 뿐이다.
1939년에 유복한 백인 가정에 남성으로 태어난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파머(P Palmer)는 제대로 ‘준비된 시민’으로 살아가는 법을 모르며 성장한 첫 세대라고 고백한다. 처음부터 자유와 풍요가 주어진 세상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들 세대에 초창기 미국의 고된 이민사는 전설일 뿐이었고, 대공황의 시련이나 세계대전의 비극 또한 역사일 따름이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무엇보다 ‘시민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가 깨닫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턴가 미국 민주주의에 퇴화와 위기의 조짐이 만연하면서부터였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이와 같은 미국의 경험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 MZ세대를 향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날 때부터 민주주의가 일종의 ‘자연 상태’였기에 이들은 ‘시민의 자격’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별로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마음의 습속’이 따로 있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몸소 성취한 자유와 평등이 아니기에 민주주의의 피땀 어린 가치에도 온전히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만큼 최근 MZ세대가 보여준 표심의 급변 역시 정치적 판단의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먼 훗날 만약 이들이 나름 ‘위대한 세대’로 평가되기 바란다면 차제에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마음의 근육부터 연마하고 단련하기 바란다. 사실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민주주의 마음’이라는 게 애당초 없다시피 했다. ‘민주주의 마음’의 바탕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다. 각 개인의 자기 판단, 자기 결정, 자기 책임이 삶의 대원칙인 것이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립, 인격적 자존만큼 중요한 덕목은 없다. 거룩한 이념이나 달콤한 선동을 쫓다 보면 노예 습관이나 거지 근성만 늘 뿐이다. 공동체로 가는 길은 각자 정직하게 경쟁하고 공정하게 심판받을 때 저절로 열리는 법이다.
공짜 고무신과 막걸리가 민주주의는 아니다. 민주주의가 386세대의 발명품도 아니다. 광장과 촛불은 민주주의의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어쩌다 시민’으로 태어난 작금의 MZ세대가 ‘준비된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에 달렸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하버마스는 민주주의 시민사회의 이상적 발화 상황을 ‘완벽한 대학원 세미나’에 비유했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 하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성과 논리, 정직과 진실, 대화와 토론, 그리고 존중과 책임의 중요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