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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에 1866년(고종 3년) 설치됐던 ‘광화문 월대’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4월 25일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광화문 월대의 복원·정비를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진행 중인 발굴조사의 성과, 향후 복원계획 등을 발표했다./뉴스1

얼마 전 서울시는 ‘제2기 역사 도시 서울 기본 계획(2023~2027년)’을 공개했다. 향후 5년간 1조2840억원을 들여 서울의 역사·문화를 복원·관리하겠다는 중·장기 프로그램이다. 제2기라 명명(命名)했듯, 이는 박원순 시장이 2016년에 발표한 ‘역사도시 서울 기본계획(2017~2021년)’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시정(市政) 전반에 걸쳐 전임자와 달라지고 싶어 하는 듯한 오세훈 시장도 역사 문화 도시 서울에 대한 인식에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2000년 역사 도시 서울’ 담론이다. 서울의 역사는 조선조 한양 500년은 물론이거니와, 고려 시대 남경을 거쳐 고대 백제 한성까지 소급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도심부 조선 시대 주요 유적 복원에 역사 도시 서울 계획의 주안점이 놓여있는 가운데, 종로구 일원에서는 고려사 자취 추적에, 송파구 일대에서는 백제사 흔적 발굴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 한양이나 고려 시대 남경, 삼국 시대 한성이 오늘날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정체성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역사가 오랠수록 반드시 더 좋은 도시는 아니다. 역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유산을 무조건 받들 필요도 없다. 현재 서울의 시공간적 모태라는 사실이 옛 한양을 반드시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비록 정치 이념은 거룩했으나 한양의 실상은 신분 도시이자 노비 도시였다. 국내적으로는 특권적 왕도(王都)였고 대외적으로는 중국을 따르고 섬겼다. 무엇보다 한양은 경제적으로 정체된 도시였는데, 이는 무역을 억제하고 상공업을 천시한 탓이다. ‘위대한 문명 뒤에는 위대한 도시가 있다’는 세계사적 법칙이 우리한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에 비해 20세기 서울은 대한민국을 순식간에 세계 굴지의 부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 배경에는 한양과 비교하여 확연히 달라진 서울의 자화상이 있었다. 무엇보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는 정의(定義)에 충실한 서울이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출범을 계기로 처음 등장했다. 도시를 국부(國富)의 원천이라 생각하는 중상주의 도시관(都市觀) 또한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과정에서 보편화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개방과 교류, 다양성이 새로운 도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동참하면서 도시 경쟁력이라는 개념도 자연스레 일상화되었다. 자유 도시, 경제 도시, 국제 도시 서울이 20세기 말에 이르러 월드 클래스 메트로폴리스로 천지개벽한 것은 결코 과거 한양의 은덕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한양에 대한 의식적 차별화의 개가다.

물론 서울의 역사를 길게 잡아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역사를 무작정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원래 모습대로 재현·보전하는 방식이 최선이자 능사는 아니다. 언필칭 역사 도시 서울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일부 국수주의 사학자나 귀족풍 문화재 애호가의 판단에 맡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의 의고주의(擬古主義) 취향은 역사를 살아 숨 쉬는 그 무엇이 아닌, 전시나 관람의 대상으로 박제(剝製)시킬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작금의 역사 도시 기본 계획에 따라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가 정확히 기억되고 올바로 전승되는 것도 아니다. 가령 ‘자주적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대한제국기 한성의 유산 발굴 및 보존에 치중하는 모습은 근대 실증주의 역사학에 역행한다. 학계에 논란이 많은 만큼 객관적인 평가를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른바 ‘원형 복원’이라는 것 또한 많은 경우 허구 아니면 허사다. 이는 10여 년 전 숭례문 원형 복구의 실패가 웅변하는 바이다. 지난 5월 ‘덕수궁 제 모습 찾기’ 일환으로 ‘복원’이 마무리된 돈덕전 역시 문화재청 스스로 ‘재건’이라 밝힐 정도다. 자료 부족이 이유였다. 그럼에도 역사 도시 서울 기본 계획에는 돈의문이나 월대 등의 실물 복원 약속이 여전히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역사 도시를 말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과거에 대한 아련한 옛사랑 때문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역사의 교훈과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정한 역사 도시 서울의 주인공은 한양이나 남경, 한성이 아니라 20세기 후반 한반도의 운명을 통째 바꾼 대한민국 서울이 되어야 한다. 한양을 위한 서울이 아니라 서울을 위한 한양이 원칙인 것이다. 경복궁이 BTS 성지가 되고 전통 한옥이 럭셔리 브랜드 행사 장소로 애용되듯 말이다. 차제에 서대문 재건도 21세기 한국이 뽐낼 수 있는 최신 기법과 첨단 소재를 사용하면 어떨까. 무릇 선진국형 역사 도시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