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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각)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팜비치 국제공항에 도착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AP 연합뉴스

적 항공기가 아군 레이더망에 포착되었을 때, 군사 강국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무기 체계로 대응한다. 지대공미사일, 공대공미사일, 대공포를 쏘거나, 적의 GPS 신호를 방해하여 전투기의 항법 시스템을 오작동하게 할 수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기를 시작한 후 첫 3주 동안 주말도 없이 새로운 정책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직업병처럼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콜롬비아,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이 트럼프의 레이더망에 가장 빨리 걸렸다. 그가 가장 선호하는 대응 수단은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중국에 예상보다 낮은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여 향후 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밑밥을 깔았다. 미국의 직접적 영향권 내에 있는 캐나다, 멕시코, 콜롬비아에서 25% 관세를 무기로 국경 보안과 마약 밀매 차단이라는 성과를 도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앞에 적과 우방, 심지어 동맹국과의 경계선도 모호해졌다. 이들 모두가 트럼프의 레이더망에 걸리면 어떤 무기로 공격받을지 아무도 모른다. 새 떼나 풍선 정도로 보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다. 한국이 언제 레이더망에 걸릴지, 만약 걸리게 되면 어떤 ‘공격’을 받을지도 미지수다. 그렇다고 웅크리고 앉아 트럼프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방법은 트럼프 1기 4년, 당선인 시기 2개월, 취임 후 3주 동안의 ‘행적’을 보며 레이더망의 성능을 알아내 대응 체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관세는 이미 경제적 차원을 넘어 트럼프가 가장 선호하는 강력한 협상 도구로 판명되었다. 이 외에도 규제와 쿼터를 통해 수입품을 제한하는 비관세 장벽이 있고, 중국·한국·일본 등을 ‘환율 조작국 리스트’에 올리는 것을 경제·외교적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 금융 거래 차단으로 경제 제재를 가할 수 있고, 러시아와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미국산 에너지를 수입하도록 에너지 카드를 쓸 수 있다.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압박은 집권 1기에 이미 선보였다. 중국의 첨단 기술 산업을 봉쇄하기 위한 수출 통제는 바이든 행정부 시기부터 가동 중이다.

미국의 핵심 동맹국임을 자부하는 한국이 트럼프의 레이더망에 걸리기 전에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보다 적대국 지도자들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동맹국의 ‘상호주의(reciprocity)’ 원칙 결여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나토 회원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의 동맹국들조차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안보 비용을 분담하지 않고 ‘무임승차(free-riding)’하려는 경향이 너무 심하다고 본다. 동맹국이 미국을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리더로 인정하면, 미국은 동맹국의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식의 생각과 행동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집권 1기 때 독일 등 핵심 나토 회원국은 나토가 권장하는 GDP 대비 2% 국방비 지출에도 한참 못 미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혼비백산한 뒤 국방비를 올려 2023년에 간신히 2%를 넘겼다, 한국은 2.8%이니 양호하지만, 상대적 격차가 줄어들었으니,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과 별개로 국방비 증액을 압박해 올 가능성이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 3년간 한미 동맹을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발전시켰지만,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할 때는 한미 동맹을 ‘거래 동맹(transactional alliance)’으로 간주하고 냉철히 임해야 한다. 핵탄두와 투발 수단이 미국의 전략 자산이듯, 선박 건조·반도체 생산·원전 시공 능력은 한국의 전략 자산이다. 한미 동맹이 상호주의에 입각한 견고한 동맹으로 거듭나려면, 한국의 국익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략 자산의 운용 계획을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베리 수정법’과 ‘존스법’ 때문에 한국이 군함과 (국내용) 상선을 미국에 수출할 수 없으니, 군수 지원함이나 수송선 건조, 선박 유지·보수·정비(MRO) 협력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트럼프 시대에 한미 동맹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하려면 ‘트럼프식 거래’가 불가피하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트럼프 대통령과 지금까지 통화를 못 한다고 비판할 필요가 없다. 한두 번 통화 요청을 했는데 답변이 없으면 레이더망에 아직 포착이 안 된 거다. 레이더망에 걸리게 될 때를 대비해 외교·안보·통상 부처가 상호주의에 입각한 거래를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권한대행이 독려하고 지원하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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