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지금 겪고 있는 국가적 혼란과 위기는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일탈이나 거대 야당의 횡포 탓으로만 돌릴 일이 아니다. 8명의 제6공화국 대통령 가운데 5명이나 탄핵·구속의 불행을 맞았다면 이는 사람의 문제를 넘어 87년 체제에 구조적 결함이 있음을 방증한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나, 이를 어떻게 개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이번 기회에 국가지배구조에 관한 소견을 공유하고자 한다.
먼저, 행정부의 형태로는 의원내각제가 변화하는 민의를 반영하는 데는 이상적이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을 뽑아 놓고도 임기가 끝나도록 참고 기다릴 인내심이 없거나, 대통령이 과오를 저지르면 중도에 끌어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국민에게는 대통령제가 맞지 않는다. 더구나 국회가 대통령·총리 등 고위 공직자를 탄핵소추하여 사실상 정부를 마비시킬 권한을 갖고 있는데도 대통령에게는 국회를 해산할 권한이 없는 비대칭적 구조에서는 여소 야대 국회의 횡포를 막을 방법이 없다. 미국의 대통령제에서는 연방 공직자가 하원에서 탄핵소추를 당하더라도 상원의 탄핵 결정이 나올 때까지는 직무를 계속 수행하므로 당리당략 차원에서 함부로 탄핵소추를 남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 제도와는 다르다. 4년 중임제도 대통령제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나 정당 연합의 대표가 총리직을 맡는 의원내각제에서는 내각이 국회의 지지를 잃으면 언제든 파면당할 수 있고, 내각도 국회 해산권을 통해 국회의 횡포를 견제할 수 있다. 또한 선거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나오면 국정을 일사불란하게 이끌 수 있고,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없을 때는 연정을 구성해야 하므로 협치가 불가피하다.
다만, 한국 중진 의원들의 평균적 자질을 보면 이들에게 총리와 장관직을 맡길 경우 나라가 온전하게 운영될지 불안한 국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내각제가 정착되고 의원만 장관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 정치권의 인재 발탁 시스템도 바뀌고 의원들의 자질도 개선될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대통령 직선을 포기하기 싫고 내각제가 내키지 않는다면, 프랑스식 이원집정제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프랑스 제5공화국 체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이 국가원수와 군 통수권자로서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하고, 경제·사회정책 등은 총리가 이끄는 내각의 소관이다. 하원의 내각 불신임 권한을 대통령의 하원 해산권으로 견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내각제와 공통점이 있다. 프랑스식 이원집정제의 장점은 내각이 하원의 불신임을 받아 붕괴하고 내정이 불안해지더라도, 직선 대통령이 국가 안보와 외교를 차질 없이 챙길 수 있다는 점이다.
입법부도 전면적으로 개조해야 한다. 각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 비율을 일치시켜 민의를 국회 구성에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현행 소선거구 제도를 중·대선거구 제도로 바꾸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통해 승자 독식 구도와 진영 간 극한 대립을 완화할 수 있다. 입법부를 양원제로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으나, 의원 숫자는 200명 이내로 줄여야 한다. 국회의 회기도 정기국회, 임시국회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선진 민주국가들처럼 1년으로 하고 휴회 기간만 정하면 된다. 의원들의 특권도 폐지하고 세비와 보좌관 숫자도 대폭 줄여야 한다. 의원내각제의 원조(元祖)인 영국의 경우 하원의원의 세비는 차관 월급의 절반인 중앙부처 과장급 수준이고, 보좌 인력은 1~2명에 불과하지만, 우리 국회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현행 헌법재판소는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통령 유고 상태에서 권한 대행의 탄핵 소추를 의결할 국회의 정족수를 판단하는 데 거의 두 달이나 허비하는 헌법재판소라면 존치할 가치가 없다. 정족수 판단에는 심오한 법리가 필요 없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위기 상황에서 권한 대행 탄핵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 혼란한 정국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 여부와 함께 군 통수 체제의 공백이 국가 안보에 초래할 위험성에 대한 상식적 판단 능력만 있다면 탄핵소추 정족수 판정에 한 시간 이상 걸릴 이유가 없다. 탄핵과 국가기관 간 권한쟁의 심판은 헌정을 직접 운영해본 전직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으로 구성되는 헌법위원회에 맡기고, 법률의 위헌 여부 판단은 대법원에 돌려주면 된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의 자질이 부족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제도의 개선으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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