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막바지에 정국이 요동쳤다. 지난 8일에는 윤 대통령이 구속 취소로 석방됐고 13일에는 헌법재판소가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중앙지검장 등 검사 3인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대통령실은 “결정을 환영한다”면서 “헌법재판소가 야당의 탄핵 남발에 경종을 울렸다”는 논평을 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과 국민의힘 다수 의원은 오랜만에 기세를 올렸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윤 대통령이 한숨을 돌리는 건 민주당 덕이다. 구속 취소 요인인 구속 시간 계산이나 수사권 문제의 진짜 주인공은 검찰이 아니라 공수처다. 검찰 특수본을 못 믿겠다며 윤 대통령 수사만은 공수처에 빨리 넘기라고 종주먹을 들이댄 건 민주당 사람들이다. 이번에 즉시항고를 요구하며 버텼던 검찰 특수본은 그때도 “공수처에 넘기면 일이 제대로 안 된다”며 반발했지만 심우정 검찰총장은 민주당 요구에 따랐다. 이후 공수처는 무능과 야심을 동시에 드러내며 탄핵 반대 진영 결집의 공신 노릇을 하더니 결국 구속 취소의 길까지 열었다.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줄줄이 만장일치 탄핵 기각이 민주당의 졸속 밀어붙이기에서 비롯됐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일들이 결국 민주당에 전화위복으로 작용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윤 대통령 구속 취소의 실질적 수혜자는 이재명 대표다.
지난달부터 이 대표는 우클릭·통합 행보를 강화했다. 세금 깎는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는 한편 비명계 인사들을 만나 화합을 다짐했다.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이 적잖았지만 효과가 나쁘진 않았다. 그러던 중 돌연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친명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긴장이 풀려서일까? 지난 2023년 9월 민주당의 대거 이탈 표에 힘입어 대북 송금 의혹·허위 사실 공포 혐의 등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통과됐을 때를 복기하다가 비명계와 검찰 내통 음모론을 꺼냈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사적 욕망의 도구로 쓰고, 상대 정당 또는 아주 폭력적 집단(검찰)하고 암거래를 하는 이 집단들이 살아남아 있으면 당이 뭐가 되겠느냐”고 비주류를 다시 짓밟았다.
한 손으로 악수하고 다른 손으로 뺨 때리는 이재명 앞에서 비명계는 “또다시 바보가 된 느낌”이라며 거세게 반발했지만 그로부터 사흘 후 윤 대통령이 석방되자 광화문 천막에서 조용히 단체 사진을 찍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전 준비 움직임을 시작하던 국민의힘 지도부와 대선 후보군도 비명계처럼 다시 숨을 죽였다.
탄핵 전원 기각도 그렇다. 여권이 헌재 판결을 대환영했지만 민주당이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전원 일치 결정을 하며 호흡을 맞추고 구심력을 높이는 것, 보수 진영이 헌재 결정을 환영하고 수용력을 높이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다. 민주당 한 의원은 “이진숙 (방통위원장) 4대 4 기각보다 이번이 훨씬 낫다“고 털어놓았다.
윤석열과 이재명의 상부상조는 대선 경선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의 맞상대로 비문 계열 이재명이 더 유리했고 ‘대장동 게이트’ 주역의 상대로는 검찰총장 윤석열이 더 유리했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국정이 삐걱거렸지만 패전지장 이재명이 각급 선거에 억지로 출마하면서 당권을 그악스럽게 거머쥔 후 민주당을 방탄 당으로 만든 덕에 대통령 지지율이 그럭저럭 유지됐다. 여기까지는 이재명의 퍼주기다.
곧바로 이어진 윤석열의 보답은 톡톡했다. 무단히 스스로 판을 키운 서울 강서구청장 재보선과 판을 뒤집은 총선이 대표적이다. 총선 정국에서 민주당 ‘비명횡사’ 공천 논란이 거세지고 이재명이 코너에 몰리자 윤석열이 등장해 아내가 ‘박절’하지 못해 받은 명품백 논란, 이종섭 전 대사 임명 건, 의대 증원 규모 고집 담화 등을 연달아 내놓았다.
계엄도 그렇다. 이재명이 공직선거법 1심 판결에서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형을 받은 것이 지난해 11월 15일이었다. 국민의힘은 기세를 올렸고 민주당은 조급해졌다. 명태균, 김건희 특검법으로 용산에 역공을 가했지만 선거법 2심과 3심은 각각 3개월 안에 마쳐야 한다는 원칙과 보수 우위의 대법원 구성 등이 이재명의 목을 조였다. 다른 재판도 줄줄이라 일주일에 두세 번씩 법원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공판 일정, 차례차례 다가오는 선고 일정에 비해 2027년 3월 대선은 너무 멀게 보였다. 하지만 이재명 재판 18일 후의 비상계엄으로 윤석열이 그 족쇄를 일거에 끊어줬다. 받은 것에 비해 너무 많이 돌려준 듯싶다. 이제 그것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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