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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오른쪽)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열린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 준비 기도회에 참석해 예배하고 있다./뉴시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결론이 코앞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깊고 날카로운 균열 위에 서 있다. 서로를 향한 양극단의 분노는 이제 손가락질에서 주먹질로 번질 기세다. 이대로라면 판결 이후에 더 깊은 갈등과 혼돈의 수렁으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우리’와 ‘그들’을 나누도록 프로그래밍된 존재다. 부족 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 편은 선이고 상대편은 악마인 게 생존에 유리했다. 하지만 21세기 한국 사회는 구석기의 부족 전쟁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극단적 분열은 생존을 돕기는커녕 모두를 파멸로 이끌 뿐이다.

몇 년 전 여야 국회의원들의 독서 모임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공감의 반경에 대한 토론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나는 다소 직설적인 질문을 던졌다. “어쩌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통합’이라는 단어조차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을까요? 요즘 의원들은 아예 자기 팬덤만 챙기겠다고 작정한 거 같아요.”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나중에 한 의원이 다가오더니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사실 국회 의원회관에 목욕탕이 있어요. 예전에는 여야 의원이 본회의에서 노골적으로 싸우다가도 목욕탕에 들어와서는 ‘선배님, 아까는 너무 세게 나오신 거 아니에요?’ 하고 웃으며 농담하곤 했어요. 그러다 보면 갈등이 누그러졌죠.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아예 목욕탕에서조차 얼굴 보기를 꺼립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같이 숨 쉬는 공기조차 불편한 상황이에요.”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비극이다. 이제 우리 정치에는 서로 등을 밀어주는 문화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인류 탄생 이후로 갈등 없는 시기가 과연 있기나 했을까? 진짜 문제는 갈등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반대자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 비상계엄을 선포해 버린 대통령과, 의견이 다르다고 탄핵 카드들부터 꺼냈던 국회의 공통점은 갈등을 파국으로 보는 극단적 인식이다.

그러나 다행이다. 인간 본성에는 갈등만큼이나 강력한 화해 본능도 있으니.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은 침팬지와 보노보 같은 영장류가 치열한 싸움 후에 상대방에게 다가가 털을 고르고 포옹하고 키스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화해를 위한 스킨십이 진화한 것이다. 그들은 이런 행동을 통해 관계를 복원하고 집단의 평화와 생존을 유지해 왔다. 사실 우리 사피엔스는 그 이상이다. 갈등 이후에 화해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진작 멸종했을 것이고 지구 상에 문명 따위는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선, 집단 사이에 파인 깊은 골을 메우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야 한다. 사회심리학의 ‘접촉 가설’에 따르면,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진 집단이라도 지속적으로 만나고 교류하면 편견이 줄어든다. 단, 조건이 있다. 긍정적 만남이 되려면 집단 간 지위가 대등한 상태에서 만나야 하고(노예와 주인 관계로 백날 만나봐야 소용이 없다), 협력적 분위기에서 상호작용 해야 하며, 사회적 지지와 공동 목표가 있어야 한다. 즉, 진정성이 있는 접촉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북아일랜드의 ‘성금요일 협정’은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무려 30년간 구교계와 신교계의 유혈 충돌로 3600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5만명 이상 나온 북아일랜드에서는 분쟁을 종결할 협정을 체결했다(1998년 4월 10일). 그 후 양쪽 진영 청소년들은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정기적으로 문화 교류와 봉사 활동을 함께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점진적으로 서로를 적이 아닌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평화 프로세스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편견과 적대감은 지난날보다 크게 감소했다.

제주 4·3 사건 치유 과정도 좋은 사례다. 이 과정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희생자 유족들에게 사과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추모 행사, 평화 공원 설립, 역사 교육 프로그램 같은 제도적 지원이 이어졌고, 제주도민과 육지 사람들의 빈번한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혐오가 줄어들었다.

불행히도 그동안 우리 정치권은 사회 분열의 가장 강력한 진원지였다. 극한 분열 시기에 그들이 통합의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로 환골탈태할 수는 없을까? 그러기 위해 해야 할 일. 첫째, 헌재의 판결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자신들의 팬덤을 넘어 상대 진영의 고통과 요구에도 공감의 손길을 뻗어야 한다. 단지 ‘정치 쇼’로서 화해가 아니라 상대방의 상처에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도자들이 솔선해서 ‘공감의 목욕탕’에 다시 들어가 상대 진영의 등을 밀어줄 때 국민들도 서로에게 손을 내밀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호 협조를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한 공동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경제, 안보, 인구, 교육, 의료 위기와 같은 공동 난제를 함께 풀어내야 한다. 우리가 공유할 미래는 절대 한 진영만의 승리로 이루어질 수 없다. 서로가 등을 돌려서는 희망이 없다. 대한민국의 지속과 공존의 길목에서 모두에게 절실한 결정은 ‘화해할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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