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래 한국의 독자 핵무장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지가 증가 추세다. 2017년 북한의 제6차 핵실험 이후 주로 보수적 시민단체들에 의해 제기되기 시작한 핵무장 담론은 이제 학계와 전문가들을 거쳐 일반 국민에게도 폭넓게 확산되었다. 30년에 걸친 회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해결 전망이 희박한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실질적 억지력을 확보하려면 독자적 핵무장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그 주장엔 강력한 논리적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한국이 핵무장을 강행할 경우 북한과 이란처럼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로 국내 산업 기반이 초토화되리라는 반론이 제기되자, 그 대안으로서 미국의 사전 양해와 묵인하에 핵무장을 하자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한 주장이 더욱 힘을 얻게 된 것은 ‘한국의 핵무장까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논의해야 한다’는 트럼프 선거 캠프 소속 엘브리지 콜비(Elbridge Colby) 전 국방부 부차관보의 공개적 주장 때문이었다. 그에 고무된 많은 한국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할 경우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자 그 희망은 더욱 부풀고 있다.
인류 역사상 모든 핵무기 개발은 예외 없이 자국 정부와 국민조차 모르게 극비리에 추진되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도 그랬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서 핵무장에 성공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핵개발 정보가 끝까지 누설되지 않았고 핵실험도 실시하지 않은 관계로 용케 제재 조치를 피해 갔다.
그러나 인도, 파키스탄, 북한은 모두 장기간 혹독한 제재를 면할 수 없었다. 이런 역사적 선례들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핵무장 추진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면서 이에 대한 미국의 사전 양해와 묵인을 압박하는 전대미문의 접근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그런 공개적 접근법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대북한 핵 억지력 확보를 위해 독자 핵무장 외에는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논리적 당위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처럼 공개적 방식으로 핵보유 의지를 표출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접근법인지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런 공개적 접근 방식은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감시와 견제를 크게 강화시켜 스스로 손발을 묶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고려해 핵무장을 용인할지도 모른다는 논리는 한반도라는 우물 안에서는 통용될지 모르나 우물 밖의 국제사회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비현실적 가설이다. 이란, 이집트, 사우디, 튀르키예 등 중동 제국의 핵무장을 막고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해야 하는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예외적으로 용인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만일 한국이 불가피하게 핵무장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이스라엘처럼 극비리에 핵개발을 단행하고 발각 시엔 북한과 이란처럼 제재를 감내하는 길밖에는 방법이 없다. 핵무장은 토론과 세미나로 실현될 일이 아니며, 핵무장으로 가는 험난한 길엔 지름길도 샛길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현실을 수긍하는 사람들은 그 대안으로서,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일본처럼 상업적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을 보유함으로써 유사시 즉각 핵무기 제조에 나설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교적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 이 주장은 국내적으로 상당히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으나, 이 역시 미국의 호응을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새 원자력협정에 따른 농축 시설과 재처리 시설을 절대 핵무장에 이용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미국 정부가 갖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 당시, 상업적 핵 시설을 이용한 핵무장을 추구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미국 정부에 심어주기 위해 10년 이상의 긴 세월을 투자했다. 그러나 한국은 그와 정반대로 독자 핵무장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로 원자력협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한국 사회의 공개적 핵무장 논의는 국제사회의 불필요한 의심과 감시를 유발하고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어렵게 만들어 독자 핵무장의 꿈을 더욱 요원하게 만드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