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년 전(2019년 12월 11일 자) ‘달빛을 베다’라는 제목의 본란 칼럼에서 필자는 이렇게 썼다. “작금의 대한민국에 월광참도(月光斬刀)를 들고 홀연 등장한 협객(俠客)이 있으니, 다름 아닌 검사 윤석열이다. (중략) “이게 나라냐” 싶을 만큼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무협지의 생생한 무대다. (중략) 달빛 황제 문의 난정(亂政)이 그치지 않자 월광참도를 지닌 협객 윤이 보다 못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던 황제 문을 향해 날 선 칼을 들이대는 놀라운 반전(反轉)에 반전이 거듭되는 모습이니 말이다. (중략) 시절이 하수상하게 요동칠수록, 시대가 더없는 난세의 수렁으로 빠져들수록 강호의 무협은 되살아난다. (중략) 협객 윤의 월광참도가 달빛을 베는 광경을 곧 목도하리라.”
# 일 년이 지난 작금의 상황은 그 어떤 무협지보다도 더한 듯싶다. 월성 원전 관련 수사를 통해 윤의 칼끝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가자 문의 위기감은 극에 달했고 그것이 추 법무를 촉발시켜 지난달 24일 현직 검찰총장을 전격적으로 직무 배제한 후 징계위에 회부하는 극단의 조치를 서슴지 않게 만들었다. 이에 평검사들은 물론 추 법무 쪽으로 분류되던 검사장들마저 항명하고 사퇴하는 가운데 윤은 법원에서의 직무 정지 가처분 인용으로 엿새 만에 총장 자리에 복귀했고 바로 다음 날 대전지검의 월성 원전 관련 영장 청구를 승인하는 등 다시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이에 법원도 청구된 3건 중 2건에 대해 영장을 발부해 산자부 공무원 2명이 구속되며 수사의 방향도 점차 윗선과 청와대를 향하게 됐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윤은 지난주에 이어 내일 또다시 편향성과 위법성 논란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징계위에 자신의 목을 내걸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서 있다.
# 그러나 징계위의 처분 결과와는 별개로 윤은 이미 민심이란 호랑이 등에 태워져 정치의 한복판에 내몰려 있다. 최근 발표된 여러 건의 여론조사에서 윤은 현직 공무원의 신분이고 정치하겠다는 언명조차도 한 바 없으나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에서 오차 범위를 넘어선 1위다. 정한중 징계위 위원장 직무대행이 이를 문제 삼아 “왜 정치를 안 한다고 하지 않나?” “왜 여론조사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하지 않냐?”고 윤 측에 물었다지만 윤은 이미 이전에 조사 대상에서 빼달라고 수차례 얘기한 바 있고, 사실인 즉 윤이 정치하겠다고 스스로 나선 게 아니라 정작 그를 정치의 한복판으로 내몬 것은 추 아니었던가. 더 적확하게 말하자면 ‘문의 두려움’과 ‘추의 광기’였지 않은가!
# 애초에 이른바 ‘판사 사찰’에 무게를 두었던 직무 정지와 징계위 회부의 주된 이유가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조차 대응 안건이 일곱 번씩 부결되는 등 힘을 얻지 못하자 지난주 열린 징계위부터는 윤의 정치적 중립 위반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로 슬그머니 방향을 튼 느낌이다. 여기에 이른바 ‘윤석열 출마 금지법’이라 할 만한 희한한 법안마저 만들겠다는 얘기까지 들리는 것을 보면 이제는 윤을 징계하고 쫓아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가 정치판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가 된 듯싶다. 그래서 징계위의 처분도 면직이나 해직이 아니라 6개월 정도의 정직에 처한 후 지난주 전격 처리된 공수처법 개정안에 따라 공수처가 설치되면 윤을 제1호 대상으로 삼아 그를 아예 정치와 절연·격리시키려고 할지도 모른다. 결국 징계위든 공수처든 출마 금지법이든 타깃은 윤인 셈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윤은 때릴수록 단단해지고 맞을수록 커지며 가둘수록 주목받는 속성이 있는 듯싶다. 그만큼 윤은 태풍의 눈이 되어버린 것이다.
# 사실 윤의 오늘이 있게 만든 이는 다름 아닌 문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그런 윤을 친문에 대항하는 정권 교체의 히든카드로 전면 호출한 것은 역설적으로 문에 몸서리치는 반문(反文)·척문(斥文)의 들불 같은 민심이었다. 사실상 여도 야도 아닌 윤의 등장으로 여야의 대선판 전체가 흔들리고 이른바 여야의 잠룡들은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치에 공식적으로 입문도 하지 않은 윤이 졸지에 가장 강력한 차기 주자로 부각된 것 자체가 파격의 파격 곧 초(超)파격이지 않은가. 여담이지만 윤은 건달기가 다분한 사내처럼 보인다. 고시를 9수하면서 신림동 고시촌을 어슬렁거리며 두주불사(斗酒不辭)하던 ‘수수께끼 같은 공백 시대’를 자기 인생에 담고 있는 이다. 어쩌면 그의 초파격의 인생 저력은 그 시기에 형성되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는 걸레 스님이라 불리던 중광(重光)을 따라 다니며 기행(奇行)을 일삼기도 했을 만큼 삶 자체에 파격적인 면모가 스며있는 이다. 하지만 술 마시면 으레 노래 한 곡조 뽑고 놀 줄도 알고 친구의 상가(喪家)에서 홀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애잔함을 삭이는 그런 소탈함도 지닌 사내다.
# 이제 바야흐로 그런 윤석열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넘어야 할 세 산이 있다. 첫째는 이른바 국정 농단을 파헤친 수사의 산이다. 두 대통령, 한 대법원장, 그리고 세 국정원장 등을 몽땅 감옥에 처넣었던 것이 온당했냐는 역사적·정치적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장모와 아내의 산이다. 이미 여러 차례 이런저런 구설들에 대한 해명을 했다지만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소회를 뛰어넘어 보다 공적인 위치에서 담담하게 밝힐 것은 밝히고 오해를 풀 것은 풀어야 한다. 셋째는 평생을 검사로만 살아온 업장(業障)의 산이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넘기 힘든 산일지 모른다. 인간세의 어둡고 부정적인 면만 파헤쳐온 본인의 업장을 털고 사람 사는 세상의 밝고 긍정적인 면을 다시 세우겠다는 각오와 면모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짜 윤석열의 시간이 제대로 펼쳐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