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출 증가율이 점점 떨어지는데, 동남아 국가들은 수출 증가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3월 이후 인도네시아는 40%가 넘었고,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도 20~30%씩 늘었다” “이러다 ‘세계의 공장’ 자리를 뺏기는 것 아니냐”….
중국 증권사 리포트와 경제 매체 기사에는 지난 5월부터 이런 분석이 자주 등장한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연초부터 톈진과 시안, 선전, 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들이 줄줄이 봉쇄에 들어가고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중국으로 와야 할 수출 주문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동남아 수출 늘자 중국은 줄어
수출은 지난해 중국이 8.1%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작년 증가율은 29.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랬던 수출이 올 들어 계속 내리막길이다. 1~2월 합산 16.3%였던 수출 증가율은 3월 14.7%, 4월 3.9%로 곤두박질쳤다. 5월에는 16.9%로 반등했지만, 상하이 봉쇄가 완화되면서 그동안 밀려 있던 주문 물량이 나간 것이라 ‘반짝 반등’이라는 게 중국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면 동남아 국가들은 연초부터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1월과 2월 각각 25.3%와 34.1%였던 인도네시아의 수출 증가율은 3월 44.4%, 4월 47.8%로 치솟았다. 베트남도 3월 16.6%, 4월 25.8%로 수출이 늘었다. 말레이시아와 태국도 4월 수출 증가율이 모두 20%를 넘었다.
중국과 동남아의 수출 증가율이 엇갈린 가장 큰 이유는 방역 정책이다. 작년 오미크론 확산으로 홍역을 치른 동남아 국가들은 ‘위드 코로나’로 방역 전략을 수정하면서 올 2월을 전후해 확진자 숫자가 정점을 찍었다. 그에 따라 공장 가동이 재개되면서 수출이 급증하는 추세다.
인도 전 세계 휴대전화 15.5% 생산
중국은 반대로 빠른 속도로 확산하는 오미크론을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막겠다며 인구 1000만명 이상 대도시를 줄줄이 봉쇄하는 바람에 물류망이 붕괴하고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상하이와 선전은 중국 수출 1·2위를 차지하는 곳이다.
중국 분석 기관들은 의류와 방직, 가구, 소비자 가전, 전자 부품 등을 중심으로 중국으로 와야 할 수출 주문이 동남아로 향한 것으로 분석했다. 화시(華西)증권 연구소는 5월 초 보고서에서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수출 품목은 76%가 서로 겹친다”면서 “동남아 국가들의 수출이 빠르게 늘면서 중국 수출과 수출 주문이 하락한 걸 보면 중국으로 올 주문이 동남아로 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관영 증권시보도 “동남아 지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정점을 지나가면서 의류와 방직, 가구, 소비자 가전 등을 중심으로 수출 주문이 옮아가고 있다”고 했다.
중국 내에서는 이런 추세가 본격적인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지면서 중국의 ‘세계 공장’ 지위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의류, 신발, 방직, 가구 등 노동 집약적 산업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중국에서 동남아 지역으로 공급망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은 물론, 중국 기업까지 인력난과 고임금 등을 버티지 못하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로 생산 시설을 옮기는 것이다.
2018년 이후에는 소비자 가전과 휴대전화 생산 기지 등도 옮겨가는 추세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16년 전 세계 휴대전화 생산량의 75%를 차지했던 중국은 2021년엔 그 비율이 67.4%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인도는 8.7%에서 15.5%로 두 배 수준이 됐고, 베트남도 10.7%에서 11.0%로 소폭 증가했다.
“중국 올인 시대 끝났다”
극단적 방역 정책으로 중국 내 공급망이 수시로 흔들리면서 글로벌 기업과 중국 기업들의 인도, 동남아 이전은 더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징은 “중국의 공급망 우세가 단기간에 흔들리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외자 기업들이 과거의 ‘중국 올인(All in·다 걸기)’에서 벗어나 ‘중국+N’ 전략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휴대전화 업체인 애플은 전체 제품의 90% 이상을 생산해온 중국의 비중을 줄이고 올해부터 인도, 베트남 등지에서 생산을 늘리기로 한 바 있다. 인도 폭스콘 공장은 4월 초부터 아이폰13 생산을 시작했다.
스웨덴에 본사를 둔 패션 브랜드 H&M도 지난 수년간 중국에서 생산 라인을 빼내 방글라데시,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로 옮겼다. 일본의 소니와 도시바, 미국의 스포츠웨어 브랜드 언더아머, 전동 공구 업체 스탠리블랙앤드데커 등도 인도, 베트남 등지로 생산 기지를 이전했다.
중국유럽상공회의소가 5월 초 중국 내 370회원사를 조사한 결과, 23%가 제로 코로나 정책 때문에 현재 계획 중인 대중 투자를 다른 시장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응답했다. 시진핑 주석의 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올해 말 20차 당대회까지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변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언제든 다시 공급망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6월 2일 상하이 일본공상클럽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도 상하이에 있는 일본 기업의 14%가 중국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거나 연기할 것이라고 답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의 방역 정책 때문에 일본 기업의 ‘중국+1′ 부품 조달 전략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상하이 봉쇄 풀렸지만… 생산 정상화까진 최장 1년”]
중국 당국은 지난 1일 ‘경제 심장부’인 상하이 봉쇄를 두 달 만에 풀었지만, 경제가 회복돼 정상 궤도에 오르는 데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 걸릴 전망이다. 경제성장률도 올해 정부가 목표로 내건 5.5%에 크게 못 미치는 3~4% 선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상하이시는 이달 내로 물류를 봉쇄 이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공장 생산도 정상화한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그러나 현지 외국 기업들은 공급망이 정상화되는 데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에릭 정 상하이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긴 공급망이 8주 이상 중단된 만큼 안정을 되찾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시 당국이 물류망 병목 해소에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트럭 운행에 제한이 있고 상하이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간 트럭 기사도 적잖다”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2019년 말 처음 코로나 19 환자가 나온 우한 사례를 감안하면 산업 생산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데 수개월에서 1년까지 걸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우한은 2020년 1월 하순에 도시 봉쇄에 들어가 4월 초에 풀렸는데, 산업 생산이 봉쇄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것은 2021년 1월이었다.
성장률 전망도 어둡다.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4.5%에서 4.0%로 낮췄다. 그것도 중국 정부가 대규모 부양책을 시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수치였다.
블룸버그통신 전문가 패널의 예상 수치는 3.6%에 불과했다. 시티그룹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은 각각 5.1%, 4.9%였던 전망치를 4.2%로 내렸다. S&P 글로벌은 상하이 외 다른 지역에서 다시 봉쇄가 일어나면 성장률은 3.5%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