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눈길을 끈 장면이 있었다. 윤 대통령이 증인인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직접 물어보려 하자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이 “적어주십시오”라며 제지했다. 직접 묻지 말고 변호사에게 내용을 적어 대신 묻게 하라는 것이다. “법적 근거가 뭐냐”고 따지는 변호사에게 문 대행은 “소송지휘권 행사”라고 했고, 결국 윤 대통령이 변호사를 자제시키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이 장면을 두고 법조계 인사들은 ‘낯설다’고 했다. 한 고위급 판사는 “신문 자체를 막는 것은 못 봤다”고 했고,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간부는 “특히 정치인들은 직접 신문에 적극적”이라고 했다.
실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1심 재판에서 이 대표가 증인인 성남시 공무원들에게 당시 국토부가 보낸 공문의 의미를 집요하게 물었다. 작년 1월 대장동·위례 재판에서는 유동규씨에게 “뇌물 받았냐”고 하자 유씨가 “소설 쓰지 말라”고 맞받아치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도 2021년 자녀 입시 비리 재판에서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관계자에게 아들의 인턴 활동 관련 질문을 했다.
당사자의 직접 신문은 불법이 아니다. 오히려 형사소송법 161조의 2는 ‘증인은 신청한 검사, 변호인 또는 피고인이 먼저 신문한다’고 해서 직접 신문을 피고인의 권리로 전제하고 있다. 사실관계를 잘 아는 당사자의 직접 신문은 진상 규명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물론 살인 미수나 성폭행 사건처럼 직접 신문이 2차 가해가 되면 제한해야 한다. 법에서도 그런 경우엔 분리된 장소에서 신문을 하거나, 가림막을 칠 수 있도록 했다.
문 권한대행은 윤 대통령이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증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직접 신문을 막았다고 했다. 그러나 ‘영향력’ 측면에서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과 차기 대선 지지율 1위 야당 대표 중 어느 쪽이 큰지는 쉽게 가리기 어렵다. 국정원장, 전직 사령관 같은 증인들이 가림막을 요청한 것도 아니다.
최근 제기된 절차 공정성 논란들에 대해 헌재는 “탄핵 심판과 형사 재판은 다르다”고 했다. 형사 재판처럼 절차를 다 보장해 줄 수는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3심제인 형사 재판보다 단심(單審)으로 끝나는 탄핵 심판이 오히려 절차 보장의 필요는 더 크다. 특히 증인들이 검찰 조사와 다른 내용을 증언하고 있어 당사자인 윤 대통령이 직접 물어볼 필요도 있다.
법조계 속설 중에 “엄벌에 처할 사건일수록 판사가 잘해준다”는 말이 있다. 중형 선고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정도로 ‘절차적 만족감’의 비중은 크다. 헌재가 결론을 정해 놓고 절차를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절차 논란’은 결론이 어떻게 나든 헌재 심판의 신뢰도에 흠집을 낼 수밖에 없다. 사법은 실제 공정한 것 못지않게 공정하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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