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했던 “민주당은 원래 중도·보수 정당” 발언의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이 극우화돼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진보로 평가된 것일 뿐, 민주당은 원래 성장을 중시한 중도·보수라고 했다.
이 말에 민주당은 발칵 뒤집어졌다. 당의 DNA를 이 대표가 마음대로 재해석하고 호적(戶籍)을 바꿔 버린 것으로 받아들였다. 공개적으로 반발하지 않는 이들도 “할 말이 많지만 조기 대선에서 이겨야 하니까 참겠다”며 부글부글했다.
이 대표의 말처럼 민주당이 중도·보수화된다면 지금 정치 지형에서 환영할 일이다. 좌우(左右)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증오 정치’가 완화될 여지가 생긴다.
하지만 이 대표의 ‘우클릭’을 두고 “급조된 선거 전략”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철학적 기반 없이 표를 얻기 위한 즉자적 선택이고 그 때문에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계엄 사태 이후인 1월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을 얘기했다. 이재명의 트레이드 마크인 ‘기본 사회’ ‘기본 소득’이 빠진 것은 중대한 변화로 평가됐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달 10일 이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기본 사회’가 재등장했다. 이 대표는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에 대해 ‘주 52시간 근로 예외’를 적용하는 것도 수용할 것처럼 했지만 다시 뒤집었다. 그는 “장시간 노동과 노동 착취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말 자체가 모순”이라고 했다.
그런 뒤에도 여전히 이 대표는 “경제가 너무 망가져 분배고 공정이고 얘기할 틈이 어디 있나. 살아남아야 복지를 한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변하지 않으면 바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가업(家業) 상속 지원을 위한 최고세율 인하에 대해서는 ‘초부자 감세’라는 해묵은 논리로 왜 반대하는 것인가. ‘전(全) 국민 25만원 민생 지원금’은 포기한다고 했다가, 다시 하자고 했다가, 이제는 ‘추경 통과를 위해 굳이 안 해도 된다’고 하고 있다.
만약 헌재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인용해 조기 대선이 현실화된다면, 현 상태로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는 이재명이다. 원내와 원외를 친명계가 장악하고 있어 비명(非明) 주자들이 움직일 공간을 만들기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몇 가지 변수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다. 이 대표는 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3월 중으로 예상되는 2심 선고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면 야권의 동요가 예상된다.
선거의 캐스팅보트를 쥔 중도층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무대에서 퇴장했는데, 2심까지 ‘대선 출마 자격 상실형(刑)‘을 선고받은 이 대표의 대선 출마는 공정하고 정당한가”라는 의문이 이슈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또 다른 변수는 ‘사법 리스크’ 못지않은 ‘신뢰 리스크’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의 비호감도가 높게 나타나는 결과로 이어지곤 한다. 이 대표가 ‘우클릭’과 ‘좌회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에 대해 야권은 실용주의와 유연함, 전략적 기민함이라고 방어한다. 하지만 기회주의, 말 바꾸기,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보완하기 위해 감세(減稅) 등 중도를 겨냥한 정책을 쏟아낸다고 해도 ‘믿을 수 있나’라는 의심에 막힌다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못 믿을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질 것인지 여부는 결국 이 대표 하기에 달렸다. 입으로는 중도와 보수를 외치는데 ‘성장’의 뒷다리를 잡는 모순이 반복되면 ‘신뢰 리스크’ 해소는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