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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국회의원과 교수, 기자와 평론가 등 보수 진영 지식인 혹은 지식 노동자들 예상은 엇비슷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은 매우 빠르게 결론 날 것이며, 이르면 4월 대선도 가능할 것이다. 많이 틀렸다. 탄핵 반대 시위대 기세가 나날이 높아졌다. 지금 대통령이 ‘절차적 정당성’을 두고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도 ‘거리의 보수들’이 받쳐줬기에 가능했다. 냉골에서 외친 이들의 반발이 없었더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처럼 ‘풀보다 먼저 눕는 보수’가 되었을 것이다.

“보수주의에는 ‘자본론’ 같은 건 없다, 우리가 보수주의라 부르는 태도는 이념적 교리 체계가 아니라 어떤 일군의 정서로 이뤄진다”고 한 건 보수 이론가 러셀 커크였다. “보수의 미덕은 품격”이라 믿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만큼의, 혹은 그보다 많은 보수 대중이 지금 ‘품격 따윈 개나 주라’고 하고 있다.

지난 1월 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현장. 여의도 '탄핵찬성' 집회에서 먼저 사용한 은박지 보온용품을 착용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월 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현장. 여의도 '탄핵찬성' 집회에서 먼저 사용한 은박지 보온용품을 착용하고 있다. /뉴스1

어느 전직 교수가 민주주의와 예술에 관해 수준 높은 글을 자주 올려왔다. 며칠 전, 그의 페이스북에 “현안을 외면하는 교수님 글에서 역겨움을 느낀다”는 댓글이 올라왔다, 격변이다. 그런 격변이 지금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보수끼리 이렇게 격렬히 다투는 것은 별로 본 적이 없는 듯하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1966년 9월 18일부터 10월 16일까지 28일간 아내 보부아르와 일본을 여행했다. 초청자인 게이오대와 교토 진분쇼인(인문서원)출판사는 이들을 극진히 모셨다. 긴자의 최고 요정 신키라쿠에서 식사, 1박에 200만원이 넘는 교토 다와라야 료칸 숙박을 넘어 일본 전체가 ‘지식계의 비틀스’를 극진히 모셨다. 교토로 가는 날, 두 사람이 도쿄역에 나타나지 않자 초 단위까지 맞추는 신칸센은 출발을 3분이나 늦춰줬다. 당시 동행했던 통역가는 사르트르가 다른 도시에서는 ‘산토리 올드’에 취해 인사불성이 됐고, 퇴실하면서 호텔 위스키 한 병을 슬쩍했다고 ‘즐거운 추억’으로 묘사했다.

이 여행에서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으로 출간되는 강연을 세 번 했다. ‘지식인이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위치하지만, 피지배자를 위해 지배자를 비판하는 존재’라고 했고, 일본의 반(反)베트남전 시민단체와도 만나 미 제국주의를 성토했다. 하지만 지적질도 상대를 봐가면서 했다. 체 게바라, 호찌민을 옹호하고 독일, 프랑스,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일본 제국주의는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유럽 좌파와 달리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는 쏙 빠져, 두고두고 욕을 먹었다. 지식인은 태생적으로 기생적이고, 비겁하다.

1966년 9월 28일간 일본을 방문한 사르트르. 일본에서 비틀스급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일본인 통역가가 쓴 책에 상세한 일정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진영의 용병이 되는 것을 꺼린다. 보수 지식인이 유난히 그렇다. 보수 진영에서 먹고살면서도 자신을 ‘중도 보수’라 소개한다. 좌파 지식인이 상대를 ‘극좌’라 비난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보수는 상대 주장이 조금만 격하면 ‘극우’라 멸시한다.

자기 과오에 엄격한 것이 보수의 품격이라 믿던 보수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빠르게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좌파의 ‘진영적 태도’를 복사했다고 느껴질 만큼 싸움의 태세와 기술이 변했다. 합법과 불법을 넘나든다. ‘동물성 보수의 시대’라고 표현하겠다. 격하고, 맹렬하고, 공격적이다.

이유가 있다. 현재 상황을 ‘체제(體制) 전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전쟁이다 총을 들라’는 대중과 ‘우리 편도 실수가…‘ 하는 이들이 불화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네모와 동그라미는 겹쳐지지 않는다. 그런데 네모를 비난해야 동그라미인가, 동그라미를 경멸해야 네모인가? 미국 보수주의자 맷 슐랩이 지난 2019년 한국 보수의 사분오열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수’라는 방에 다 같이 있다면, 어느 문을 열고 들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