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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월 예술의전당에서 야프 판 즈베던(가운데)의 지휘로 연주하는 서울시향./서울시향

클래식 음악은 시류를 타지 않는 고고한 분야라고 생각하기 쉽다. 천만의 말씀이다. 대중음악에 비해서 ‘집토끼(애호가)’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을 뿐 경기에 영향을 받는 건 마찬가지다. 올해 클래식 음악 시장 역시 불황에서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공연 기획사에서는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 티켓 2장을 구입하면 연말 음악회 티켓 1장을 제공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편의점에나 있는 줄만 알았던 ‘2+1 판매’를 사실상 도입한 셈이다. ‘한정 수량 소진 시 판매 조기 마감’이라는 문구는 케이블 홈쇼핑 채널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불황 기류는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얼마 전 지역 공연장에서는 ‘담당자가 미쳤어요’ 같은 자극적인 문구와 함께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티켓을 40% 할인 판매하기로 했다. 지역 관객 개발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40% 할인’은 파격적 혜택과 ‘땡처리’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는 수치다. 염가 판매에 길들여진 관객들이 이른바 ‘정상 가격’으로 다시 티켓을 구입하고 싶어질까. 최근에는 해외 연주 단체의 내한 공연이 취소되거나 기획사가 대관료를 제때 내지 못해서 향후 공연 일정을 잡지 못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모두 불황의 조짐들이다.

클래식 음악이 경기를 타지 않는다는 말은 자고이래로 거짓말이다. 말년에 모차르트가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서 빚에 허우적거렸던 것도 고질적인 사치와 낭비벽뿐 아니라 178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와 오스만튀르크의 전쟁 때문이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스트라빈스키가 단출한 소편성 작품들을 쓰기 시작한 것도 1차 대전의 여파였다. 이처럼 경제는 작곡가의 삶과 작곡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클래식 음악계의 불황 역시 코로나 사태 이후 공급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반면, 수요는 경기 침체로 위축되면서 생겨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이 불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점치기는 이르다. 다만 생존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 키워드는 짚어볼 수 있다. 우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를 깐깐하게 따지는 관객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서울시향·KBS교향악단처럼 연주력에 비해 티켓 가격은 저렴한 국내 단체들이 득을 볼 공산이 있다. 다음으로 가성비 위에는 ‘팬덤’이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임윤찬처럼 강력한 팬덤을 가진 연주자들은 타격이 덜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신인들은 거대한 ‘진입 장벽’ 앞에서 자칫 당황하거나 무기력감을 느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의 충성도를 유지하기 위해 묶어 팔고 싸게 팔고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회원제’가 불황 탈출의 화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거세지는 불황의 파고(波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 탄탄한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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