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기 취임 후 철강 관세를 ‘예외 없이 25%’로 올렸다. 그러면서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미국이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전임 대통령인 조 바이든도 비슷한 논리를 폈다. 두 사람만 특이한 것은 아니다. ‘철강은 전략 물자’란 주장으로 무역 장벽을 높여 철강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미 정부의 기조는 수십 년째 이어져 왔다. 마이클 무어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 보고서에 “철강 업계는 지난 30년간 단일대오로 수입(輸入)을 막으려 애썼고 정치권도 호응했다”고 썼다. 보고서가 나온 때가 1996년이다. 미국 철강 보호무역의 역사가 60년은 됐다는 얘기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감싸고도는 산업도 드물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이토록 지켜줬는데 아직도 보호가 필요한 상태라니 이상하다. 지난 30년 사이 40여 철강 회사가 파산했고 관련 일자리는 3분의 1이 사라졌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금융 제왕’ JP 모건이 합작해 만든 124년 역사의 US스틸은 경쟁력을 잃어 “제발 일본제철에 팔게 해달라”고 트럼프를 설득하고 있다. 통상 전문가인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교수는 가장 보호받아온 산업이 가장 허약해진 이유를 “정부의 보호에 중독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들 경제학자는 ‘미 철강 산업이 값싼 수입품 공세로 무너졌다’는 주장이 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역사가 긴 ‘공룡’ 철강 기업들이 과도한 비용과 기술 도태에 안이하게 대처하는 사이 날렵하고 잽싼 미국 내 신규 철강 기업이 시장을 빼앗은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고 본다. NBER 보고서에 따르면 미 철강 산업의 쇠락이 본격화한 1979~1991년, 예전 방식대로 고로(高爐)를 쓰는 대형 철강사의 시장 점유율은 64%에서 34%로 줄어든 반면 ‘미니밀(소형 전기로)’이라 불리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미국 내 신생 기업의 점유율은 8%에서 24%로 불어났다. 수입품 비율은 15%에서 18%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제대로 된 회사라면 이런 통계를 보고 신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기존 철강 기업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노사가 결합한 강력한 이권 단체를 만들어 ‘수입을 막아달라’며 정치권에 매달렸다. 경합주가 몰린 중부 지역에 기존 철강 기업이 모여 있다는 특성은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여 주었다. 사측은 노조의 ‘뭉치 표’를 정치권에 미끼로 썼고, 노조는 이런 구조를 지렛대 삼아 급여를 대폭 올렸다. 정치인 입장에선 표를 몰아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철강 기업·노조와 정치권이 맞물린 이 공생 관계는 ‘강철 삼각지대(steel triangle)’라 불린다. 지미 카터부터 트럼프까지, 모든 미 대통령이 예외 없이 철강 산업을 위한 무역 보호 조치를 공약하고 시행한 배경이다.
1970년대 이후 ‘미니밀’ 방식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인 신생 미국 기업의 대표는 뉴코어(Nucor)다. 현재 미국 시장 점유율 1위다. 이 회사의 초기 CEO였던 켄 아이버슨은 1984년 미 하원 청문회에 나가 모든 무역 장벽을 없애 달라고 호소했다. “관세·비관세를 포함한 모든 무역 장벽은 철강 산업의 현대화를 지연시키고 소비자에게 수십억 달러의 피해를 입힐 겁니다. 차라리 재교육 프로그램이나 세금 혜택을 통해 신기술 도입을 장려해 주십시오.” 정치권은 듣지 않았고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트럼프는 1기 때도 철강 관세를 25%로 올렸다. 그 결과 미국 철강 산업 일자리가 1000개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관세 인상으로 철강 가격이 올라, 그 피해는 자동차·가전·건설 등으로 일파만파 번졌다. 비용이 늘어나자 고용을 줄인 이들 업종의 일자리는 7만5000개가 사라졌다. 반복해 언급되는 통계이기에 알았을 텐데, 트럼프는 관세를 또 올렸다. 정치 논리가 경제를 넘어서면 이런 부조리가 생긴다. 미국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