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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한국 정치 사상 귀중한 변화를 발견하고 있다. 그것은 2030 세대의 탄핵 반대 전선(前線) 등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시 이른바 꼰대라고 하는 태극기 세대가 반대를 주도했다. 어쩌면 이번 탄핵도 박근혜 탄핵 제2막 정도로 귀결되는가 했는데 2030 세대의 등장으로 탄핵은 새로운 양상으로 진전되고 있다. 그간 헌재가 탄핵 8건 기각 결정에 이어 24일 한덕수 총리까지 탄핵을 기각한 것은 거대 야당의 탄핵 머신이 그리 쉽게 굴러가지 않고 있음을 입증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2030 세대가 가세한 탄핵 반대 물결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자유 통일을 위한 국민 대회'에서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고 있다./박성원 기자

2030 세대는 거대 야당의 독재에 의한 망국적 상황에 위기감을 느끼고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전선에 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북한을 비롯한 외부의 주권 침략 세력과 우리 내부 반국가 세력이 연계해 우리의 국가 안보가 심각히 위협받고 있는 점, 거대 야당에 가로막힌 주요 민생 법안과 입법 등의 폭주, 탄핵 남발, 예산 삭감, 선거 관리 시스템의 위기 등에 동조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정작 추구하는 것은 구체적인 야당의 국정 방해 사안에 머물지 않고 기울어진 이 나라의 입법·사법 현실을 바로잡는 균형 감각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군사정권 시절에 이어 오랫동안 여대야소(與大野小) 속에 살면서 ‘집권층의 횡포=야당 탄압’이라는 단순 구도에 익숙해져 왔다. 정부-여당은 권력의 칼자루를 쥐고 소수 야당을 옥죄어 왔으며 권력형 부조리와 횡포 역시 여권 몫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왔다. 그래서 언제나 야당 편을 들고 야당을 도와주는 것이 민주 시민의 책임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우리 국민은 여당의 횡포에는 비판적이고 상대적으로 야당의 무리수, 부정에는 관대했거나 무지했다. 우리 법은 대통령이나 행정부가 국회를 견제할 수 있는 기능은 삭제하고 국회가 행정부를 탄핵할 길만 열어놨다. 여권은 보수·우파, 야권은 진보·좌파로 편 가름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역대 최고 역전(逆轉)의 산물인 21대 국회 구성은 바로 그 결과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옳고 그름에만 매달려 야권이 쳐 놓은 미끼(계엄)를 멋모르고 덥석 물었다. 윤 대통령의 결정적 실수다.

그러나 이재명당(黨)의 거들먹거림은 곧 부메랑을 맞고 있다. 이제 우리 국민은 덮어놓고 여당이라고 비난하고 야당이라고 두둔하던 그런 이분법적 시대를 벗어나고 있다. 어찌 보면 지난 총선에서 거의 3분의 2를 차지했다고 우쭐해진 거대 거만 야당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본다. 윤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는 ‘비상계엄’이라는 단추를 누르고도 탄핵 반대라는 2030과 보수층의 우군(友軍)을 얻은 것은 윤 대통령이 지적한 국가 위기 상황에 대한 국민적 동의 때문만은 아니며, 거대 야당을 잘못 만들어준 국민적 보상감 때문이라고 보고 싶다. 지난날 집권 여당 세력의 독주로 기울었던 시계추가 민주화 이후 야권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중앙으로 균형을 되찾는 정반합(正反合) 과정을 밟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인식 변화는 헌법재판소에도 불고 있다. 헌재도 무조건 도장 찍는 장소가 아닌 곳으로 변모했다. 민주당이 마은혁 판사를 재판관에 추가로 투입하려고 최상목 권한대행 탄핵 카드를 꺼낸 것도 현재의 헌재 구성으로는 윤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어제 한 총리 탄핵 기각으로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헌재에서도 좌파-야당 일변도로 이끌려 갈 수 없다는 일종의 사법적 균형 감각이 작동하고 있음을 감지하는 대목이다.

지금 트럼프가 독주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비판한 것이지만, 하버드의 법학 교수 라이언 도어플러와 예일대 법학 및 역사학 교수 새뮤얼 모인이 공동으로 3월 20일 자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사법(courts)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마지막 중요한 방어벽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고 무책임하다. 진정한 저항은 의회에서, 행정부 일선 현장에서 그리고 거리(streets)에서 일어나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어벽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과는 달리 어쩌면 그것이 사법(헌재)에서도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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