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2024년 총선에서 대박을 기대하다 쪽박을 찼다. 180석 운운하더니 100석을 간신히 넘겼다. 누구 탓할 것 없이 자멸했다. 민주당에도 대박 기대하다 “폭삭 망했수다”로 끝난 총선이 있었으니 2012년 총선이다. 이명박 정부 심판론이 거셌고 통진당과 야권 연대도 했다. 그래도 2% 부족하다 느꼈던지 민주당은 ‘나는 꼼수다(나꼼수)‘에 손을 벌렸다. 김어준이 “냄새가 난다”며 퍼트린 천안함과 부정선거 음모론은 총선과 대선 패배로 우울했던 민주당 지지층에게 집단적 정신 승리를 안겨줬다.
민주당은 이들을 치어리더로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멤버였던 김용민을 서울 노원에 공천했다. 놀다 버리는 ‘하수구 문화‘가 국회에 입성하려던 순간 “라이스(전 미국 국무장관)를 강간해서 죽이자” 같은 과거 막말이 드러났다. 나꼼수의 여성 비하와 상품화는 이전부터 심각했다. 구속된 정봉주를 응원한다며 여성들이 “가슴이 터지도록‘이라는 글씨를 가슴에 적어 비키니 상반신 사진을 올렸다. 그중에는 MBC 부장급 기자도 있었고, 주진우는 “코피를 조심하라”고 답했다. 정치적 올바름(PC) 진영에서 나꼼수 손절론이 나왔지만, 민주당은 나꼼수를 끌어안고 자폭했다. 질 수 없었던 총선과 대선을 연패했다. 정상적이라면 여기서 관계를 끝내야 했다.
나꼼수식 개그와 음모론은 중독성이 강했다. 불리하면 음모론을 퍼트렸고, 사실과 증거를 제시하면 “보강 취재하겠다”며 팬들을 속였다. 물론 보강 취재, 이런 건 그냥 하는 소리다.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시대에 김어준은 팟캐스트,교통방송, 유튜브라는 매체를 갈아탔고, 1970년대생 중심인 4050세대는 김어준에게 중독됐다. 지난 20여 년 딴지일보, 나꼼수, 뉴스공장으로 희희덕거리다 이젠 정치 신념화 단계에 들어선 이들을 ‘김어준 세대‘라 불러도 될 것 같다. 대치동에서 강북까지, 대기업 임원에서 프리랜서까지 다양해도 김어준을 통해 그들은 대동단결이다.
여론조사 업체를 차린 김어준 방송에 총선 후보들이 나와 큰절을 하는 건 이상 행동이 아니다. 이란에 호메이니가 있었고, 민주당에 한때 이해찬이 있었다지만 지금 막후 실력자는 김어준이다. 그리고 ‘김어준 세대‘는 절대 지지로 화답하고 있다. 지난주 갤럽 여론조사에서 40대의 민주당 지지율은 55%, 50대는 46%였다. 20대 28%, 60대 36%와 비교된다. 이재명 대표 지지율 역시 40대 53%, 50대 48%였다. 20대의 이 대표 지지는 19%, 30대는 29%였다.
김어준에게 가짜 뉴스는 수치가 아니라 훈장이다. 비상계엄 직후 김어준은 정치인 암살 조와 미군의 북폭 유도 의혹을 제기했지만, 아직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상당한 허구”라는 보고서를 낸 민주당 의원은 그의 방송에 나가 사과했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그의 음모론은 1%의 사실에 99%의 허구를 가미해 “냄새는 분명히 났다”는 결론을 낼 것이다.
1970년대생을 처음 규정한 말은 ‘X세대‘였다. 나중에 ‘서태지 세대‘로 불렸고 취업 시기에는 ‘IMF 세대‘가 됐다. 그들은 김어준 방송을 들으며 청년과 중년의 바다를 건넜다. 그러더니 어느 날 급격히 꼰대가 됐다. 탄핵 반대 시위에 나간 자녀에게 “네가 못 배워서 그렇다”고 타박했다. 비판 이론 전문가라는 교수는 “아들을 극우에서 구출해 냈다”고 자랑했다. 2030들의 보수화는 너무 일찍 고약한 꼰대가 된 ‘김어준 세대’ 부모에 대한 저항이다.
몇 년 전 김어준을 잘 아는 이에게 그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어준이는 말이야, 이념이나 가치로 움직이는 아이가 아니야. 어준이를 움직이는 건 100% 돈이야.”“돈을 누가 싫어하냐”고 반박했더니 그는 “어준이는 남달라. 잘 봐”라고 답했다. 김어준은 작년 서대문에 70억원짜리 건물을 사들였다. ‘X세대‘로 피어났다가 ‘김어준 세대‘로 시들고 있는 세대의 20년 정성과 조공으로 올린 건물이다.
청년 시절 열혈 공산당원이었고 늙어서도 자신의 세탁소에 공산당 포스터를 붙이고 살던 일본의 어느 노인이 떠올랐다. 김어준 세대의 20년 뒤가 궁금하다. 여전히 김어준 방송을 들으며 “쫄지 마 씨×” “나는 영 세븐티(젊은 70대)”를 외치며 자식과 손자에게 잔소리나 하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