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판사들은 다른 판사의 판결 평가를 조심스러워한다. ‘기록을 안 봐서 모른다’며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무죄가 뒤바뀌는 것도 증거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2심 무죄판결을 두고는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 못 한 논리”라는 반응이 나온다.
1심이 이 대표에게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한 데는 ‘백현동’ 발언이 큰 몫을 했다. ‘국토부가 용도 변경을 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는 발언의 진위가 문제 됐고, 최소 스물두 공무원이 “협박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2심에선 이들의 증언이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판단 대상인 발언 요지를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2심은 1100자 분량의 이 대표 해명을 다섯으로 쪼갰고, ‘직무 유기’ ‘협박’ 같은 표현은 발언 위치상 백현동이 아닌 다른 공공기관 부지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협박’은 압박을 과장한 데 불과하다고 했다.
한 현직 법관은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라고 했다. 상대방 주장을 반박한다면서 그와 비슷하지만 다른 대상을 끌어오는 오류를 말한다. 2심이 ‘국토부 협박’을 ‘백현동’이 아닌 다른 부지에 관한 것이라고 하면서 발언 의미는 과장에 불과한 것으로 축소했고, 증언의 신빙성을 따질 필요도 없이 무죄판결이 가능해졌다. 사람과 달리 ‘허수아비 때리기’는 범죄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 발언은 백현동과 무관할까. 당시 언론 보도 제목은 <이재명 “백현동 개발 의혹, 박근혜 정부 요청에 의해 한 일”> (2021년 10월 20일 뉴스핌) <백현동 개발 사업 ‘제2의 대장동’ 공방 가열>(같은 해 10월 21일 한국일보, 소제목은 ‘李 측 “박근혜 정부 압력 탓” 주장‘) 등이다. 후속 보도도 <국토부가 협박해 백현동 용도변경했다? 공무원들 “이 지사의 무리수”>(2021년 10월 22일 중앙일보) <이재명 “백현동, 국토부 협박 탓”이라 했는데… 성남시가 국토부 요청 거듭 거부한 문건 나와>(같은 해 10월 23일 조선일보)이다. 국토부 공무원들도 백현동 부지 매각을 협박으로 표현한 데 대해 ‘유감 성명’을 냈다.
대법원 판례가 공직선거법의 ‘허위 사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유권자의 인식’이다. 언론 보도는 유권자의 인식을 보여 주는 징표다. 당시 의혹 대상이자 국감 쟁점은 백현동이었던 만큼 언론의 헤드라인이 ‘백현동’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촉박한 마감 시각을 앞둔 기자들의 해석에 이 대표 측이 주장하는 ‘검찰의 짜깁기’가 들어갈 여지는 없다.
발언 해석 또한 사법 판단 영역이다. 그러나 그 해석이 상식을 벗어나선 곤란하다.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권의 독립이 결론을 정해놓고 짜맞춘 듯한 판결, 예상치 못한 ‘허수아비 때리기’로 발현되면 사법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