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소셜미디어(트루스소셜)를 구독하고 있다. 직업만 아니면 끊고 싶다. 밤낮없이 게시물을 올리는 통에 신경이 곤두선다. 대다수가 자기 과시나 욕설 섞은 비방이다. 방금은 이렇게 시작하는 글이 올라왔다. ‘행복한 부활절 되라, 극좌 미치광이들(Lunatics)아!’ 괜히 봤다. 미국·영국 의사들은 소셜미디어 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등록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자고 나면 100개 넘게 올라와 있는 트럼프의 ‘트루스(트루스소셜에선 게시물을 이렇게 부른다)’를 보면 동의하게 된다.
남의 정신 건강을 섣불리 평가했다간 비윤리적이란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대통령의 건강 검진 결과를 종종 공개하는 미국에서도 정신 건강만큼은 비교적 사적인 영역으로 분리해 왔다. 그 배경엔 ‘골드워터 규칙’이라는 미 정신의학협회 윤리 규정이 있다. 정신과 의사가 진료하지 않은 공인(公人)에 대해 대중 매체에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1964년 미 대선 당시, 한 시사지가 정신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에 대해 물었더니 과반이 ‘부적합’이라 했다는 기사를 게재해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후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근엔 이 규칙을 바꿀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의 행동을 ‘분석’해야 한다는 여론 속에 과거와 달리 대통령의 정신 건강을 가늠할 생생한 영상 등이 온라인에 많아졌으니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내라는 주장이다.
대통령의 ‘맨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지난해 미 대선도 이런 논의에 힘을 싣고 있다. 민주당 후보이자 현직 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은 생방송 토론회에 나와 말 그대로 ‘깜박깜박’했다. 주변인들이 인지력 문제를 진작 알고도 숨겼다고밖엔 볼 수 없었다. 바이든 관련 별도 사건을 수사하던 특별 검사(로버트 허)가 선거 전 수사 보고서에 “바이든의 기억력 저하가 심각하다”고 평가했을 때도 민주당 측은 ‘정치 공세’라고 몰아세웠다. 뒤늦게 후보를 바꿨지만 민주당은 결국 완패했다. ‘핵 버튼’ 쥔 대통령이 그 상태로 일했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여러 이유로 대통령의 정신 건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미국에선 우드로 윌슨 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자주 언급된다. 그는 1차 대전 종전 후 비슷한 비극을 막자며 유엔의 전신(前身)인 국제연맹 설립을 제안한다. 그런데 야당이 상원 비준을 앞두고 ‘전쟁 참여엔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 등 몇몇 수정 사안을 제안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비준 자체를 사실상 스스로 무산시켜버려 세계를 경악시켰다. 미국 없이 출범한 힘없는 국제연맹은 결국 나치와 2차 대전을 막지 못했다.
극단적 독선과 비현실적 이상주의에 집착했던 당시 윌슨의 정신 상태를 정신분석학 대가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아버지에 대한 과도한 애착이 초래한 자기 파괴적 성향”이라고 평가했다. 윌슨이 그즈음 뇌경색에 걸려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였음에도 이를 비밀에 부쳤고, 중요한 결정은 사실상 배우자가 했다는 사실까지 후일 드러났다. ‘뇌’ 상태가 망가진 대통령과 이를 숨긴 가족이 세계 역사의 흐름을 (나쁜 쪽으로) 바꾼 셈이다.
대통령이 되려면 남다른 고집과 자기애 정도는 있어야 하지 싶긴 하다. 하지만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한다거나, 최소한의 공감 능력조차 없고 정상적 판단이 불가능한 정도의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감추고 있다면 국가에 너무 큰 위험이다. 최고의 지도자 양성 교과서로 꼽히는 미 육군 교본은 ‘지도자는 그 어떤 기술이나 무기로 대체할 수 없는 자산’이라고 시작한다. 대통령은 특히 그럴 것이다. 40일 후면 또 대통령 선거다. 대통령의 정신 건강에 대한 미국의 논의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