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이 급락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국 경제는 화려했던 날들을 뒤로하고 정상에서 내려갈 일만 남았다. 한국 경제가 맥없이 내려앉고 있는 근본 원인은 노동과 자본, 정치 세 부문의 거버넌스가 병들었기 때문이다.

경제의 양대 생산 요소는 노동과 자본이다. 경제 성과는 노동과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먼저 노동시장을 보자. 우리의 노동시장은 기형적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한편에는 높은 임금과 고용 안정을 향유하는 소수의 정규직 임금 근로자가 있고 반대편에는 낮은 소득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다수의 비정규직과 자영업자가 있다. 두 집단 간에는 넘을 수 없는 높은 담장이 쳐져 있다. 이렇게 기형적으로 이중적인 노동시장은 소득 양극화와 노동력 미스매치의 진원지다.

이런 기형적 노동시장은 자본의 노동 착취에 대항해 노동권을 보호하고자 했던 ‘87년 체제’의 산물이다. 당초 의도와 달리 노동권 보호는 담장 안 소수의 근로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고 담장 밖의 노동권은 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자본시장은 어떤가. 자본은 성장과 수익을 추구할 때 그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자본시장은 성장이나 수익보다 더 중시하는 것이 있다. 경영권이다. 대주주가 자기 기업 주가 상승을 바라지 않는 기현상이 만연해 있다. 경영권 유지나 승계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대주주가 이러니 기업은 소액주주의 이해에 관심이 없다. 주가 저평가의 근본 이유다.

대주주가 없는 기업들은 전문 경영인이 전횡하거나 정부가 좌지우지하며 기업을 망가뜨리기 일쑤다. 이런 허약한 자본시장에서 기업가 정신과 혁신의 동력을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 결과가 어떤지를 우리는 지금 한국의 대표 기업들에서 목도하고 있다.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의 병약한 거버넌스는 제도 개혁을 통해서만 치유가 가능하다. 문제는 갈등 조정 능력을 상실한 정치 거버넌스가 첨예한 갈등을 수반하는 개혁을 제대로 수행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의 시발점은 결국 정치의 몫이다. 정치가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상적 기대를 하자면 역발상으로 노동시장 개혁은 진보 진영이 총대를 메고 자본시장 개혁은 보수 진영이 주도해서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좋은 선례들도 있다. 노태우의 북방 외교, 김영삼의 금융실명제,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개혁, 노무현의 한미 FTA 등이 그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권의 철학에 반하는 개혁이었고 지지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개혁이라는 점이다. 이런 개혁의 업적이 지난 20년 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허약한 한국 경제를 만들었다. 어느 진영이건 상관없다. 개혁의 선례를 이어받는 또 하나의 사례를 만들어 주기만 하면 된다.

지난 60여 년 동안 추세적으로 우상향했던 한국 경제의 성적표는 우리의 노력에 더해 우호적 환경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이 기간은 자유무역의 황금기로 수출 주도 성장을 하는 한국 경제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우호적 환경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더 이상 근육질 젊은이가 아니고 빠르게 나이 먹고 있는 늙은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면초가다. 이를 뚫고 나갈 길은 우리 스스로 병약한 노동과 자본, 정치 거버넌스를 건강하게 바꾸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우리 스스로의 개혁 역량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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