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처음 만나 명함을 건네면, 과학기술혁신본부가 무엇을 하는 조직이냐고 묻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고 R&D(연구 개발) 예산 배분과 조정 및 성과 평가를 담당한다”는 의례적 설명과 함께 “대한민국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미래를 고민 중”이라고 답을 드린다. 현실에서 빛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미래를 기대하고, 그래서 우리 혁신본부 구성원들의 새해 사명감은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비약적인 경제성장으로 단기간에 선진국들을 따라잡았고, 그 성공을 견인해 온 축 하나는 과학기술이다. 선진국의 경쟁 우위 요소를 꾸준히 내재화하며 추월했고, 발 빠른 추격자로서 후발국들에 성공 모델을 제시했다. 이와 같은 방법론이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

오늘날 혁신 기술이 연일 등장하면서 경제·산업 구조나 공급망을 재편하고, 인공지능(AI)과 같은 게임 체인저 기술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세계 최대 미래 기술 박람회인 ‘CES’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인공지능이란 화두를 그 중심에 두었다. 특히 로봇과 결합한 방식으로 등장한 ‘물리적 인공지능(Physical AI)’은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일상 전반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을 예고했다. 그런데 지금의 혁신 기술은 고전적 기술과 달리, 시장을 선점한 1등 외에는 과실이 돌아가지 않거나 2등을 허용조차 않는 승자 독식 성격이 짙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것도, 결국 혁신 기술을 선점하는 국가가 세계를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향후 반세기에도 최소한 지금 수준의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혁신 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보유·발전시킬 또 다른 차원의 혁신이 필요하다. 그 답은 여전히 과학기술에 있다. 이전과 같은 꾸준한 연구 개발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이전과 다른 더욱 혁신적인 성과 창출이 필요하다. 정부는 ‘추격형 R&D에서 선도형 R&D로 전환’을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으로 두었고, 올해 R&D 예산은 정부 수립 이후 최대인 29조6000억원으로 확정했다. 그 가운데 3조5000억원은 AI-반도체, 첨단 바이오, 양자 등 3대 게임 체인저 기술에, 1조원은 근본적·파괴적 변화를 이끌 혁신·도전형 R&D에 투자한다. 아울러 연구 생태계의 기본적 체질을 강화할 기초 연구에도 2조9000억원, 미래 세대를 위한 인재 양성에 1조원을 지원한다.

내일부터 14개 부처가 함께 열 올해 ‘정부 R&D 사업 합동 설명회’에는 온·오프라인으로 산학연 관계자가 약 3만명 참석할 예정이다. 최근의 국내 정치적 상황 때문에 연구 현장에서는 올해 R&D 사업을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일부 있었기에 설명회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정부는 선도형 R&D 전환을 본격화해 계속적으로 비효율을 제거하면서 개방성과 속도를 높임으로써 R&D의 성과를 꾸준히 올려갈 계획이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진작부터 내년도 R&D 예산의 투자 방향 및 기준을 마련 중이며 오는 3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더 정교한 선택과 집중, 연구 개발의 전략성 강화, 성과의 기술 사업화와 경제적 가치 창출 등에 중점을 두려 한다. 무엇보다 내년에도 혁신을 바탕으로 투자 확대 기조를 이어나갈 것이다. 선진국들과 경쟁해 이길 세계 최초·최고 연구 개발, 그리고 이를 이루려는 끊임없는 혁신에 다 같이 노력한다면, 향후 반세기를 이끌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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