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서울대 제공

필자가 강의하는 수학교육과 수업에서는 10여 년 전만 해도 여학생 비율이 30% 이상이었다. 그러나 지난 학기 수업에서는 단 한 명의 여학생만이 수강생이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성별 다양성이 점차 위축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신호일 수 있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면서 과학과 수학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 분야로의 진출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우리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중국이 개발한 ‘딥시크(DeepSeek)’가 주목받고 있다. 이는 단순 혁신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전략적 투자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의 협력이 결합된 결과다. 중국은 2017년 ‘신세대 인공지능 발전 계획’을 발표하고 AI 연구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해 왔다. 또한 딥시크는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을 영입해 경쟁력을 확보했다. 대표적으로 베이징대학교에서 컴퓨터언어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뤄푸리 연구원이 핵심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혁신을 이끄는 사례 중 하나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4년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속도로 간다면 세계가 성평등을 달성하는 데 13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긴 시간 동안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여성의 역할이 충분히 확대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특정 집단에만 기회가 집중될 경우, 혁신의 폭과 깊이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서 여성 비율이 여전히 낮다. 기계공학 등 특정 분야에서는 여성 연구자의 비율이 10% 이하로 절대적으로 낮다.

과학기술 혁신은 다양한 시각과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협력할 때 더욱 강력한 성과를 창출한다. 다양한 인재들이 과학기술 분야로 진입할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연구와 산업에서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맥킨지 보고서에서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조직이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혁신성과 수익성이 높으며,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성 과학기술인의 참여 확대는 단순한 형평성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함께 협력할 때 문제 해결의 방식이 다양해지고 혁신이 가속화된다. AI·반도체·바이오 기술 등 급변하는 미래 산업 환경에서 성별 다양성은 기술 경쟁력과 직결된다. 사회 전반에서 여성 과학기술인의 승진 기회를 확대하고, 경력 단절 방지를 위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기업과 연구소는 여성 연구자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한 시각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2월 11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여성 과학자의 날’이다. 2015년 유엔 총회에서 처음 지정된 이후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우리는 과학기술 분야의 다양성이 곧 혁신의 원동력임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한다. 다양성이 결여된 연구 환경은 획일적인 사고로 이어지고 이는 국가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여성들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단순히 배려로 여기면 안 된다.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미래 전략이다. 혁신은 모두가 함께할 때 더욱 강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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